마음의 소리
마음의 소리
  • 임현택 괴산문인협회 지부장
  • 승인 2024.01.21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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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괴산문인협회 지부장
임현택 괴산문인협회 지부장

 

잿빛으로 물드는가 싶더니 이내 흐릿해진 하늘은 목화솜 같은 둥글둥글 활짝 핀 눈송이를 흩뿌려댄다. 여우비처럼 잠깐 내리다가 곧 그치겠지 했건만 눈이 쌓이면서 도로는 이내 거북이걸음으로 정체다. 속리산 법주사 겨울 템플스테이를 참가하려면 구불구불 말티재를 넘어야 하는데 난감하다. 템플스테이는 일반인들에게 사찰을 개방하여 사찰에 머물면서 불교의 일상생활과 불교전통문화 수행정신을 체험하는 것이다. 허나, 법주사 가는 길목 이리도 많은 눈이 내리는 걸 보면 축복 중의 축복 아니겠는가. 위로하며 고갯마루에 다다르자 바람만이 휑하니 불어대던 말티재 고갯길은 걱정과 달리 온통 하얗게 덧칠되어 번뇌를 잠재운 듯 평온하다.

그날 쉼 없이 내리는 눈은 법주사 경내를 톺아보며 해설하시는 스님의 가사자락과 털신 위에도 소복이 쌓였고, 하늘로 승천할 듯 울어대던 처마 끝 물고기도 스님말씀에 경청하듯 소곳이 굽어본다. 늦은 오후 저녁예불 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참선시간에 이어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듣는 묵언시간이다. 고요한 사유 마음을 열고 나를 깨우는 시간 침묵의 시간이 어색한 난 어깨가 짓눌리며 괜스레 답답해진다.

설지 스님의 『참선의 민낯』 중에 보면 어느 가을, 마당을 쓸던 제자가 스승에게 말했다. “스님, 낙엽을 깨끗이 치웠습니다”이를 본 스승은 나뭇가지를 흔들어 낙엽 몇 장을 흩뿌리곤 말했다. “가을은 원래 이런 것이다”라 하셨다. 이처럼 수용하고 인정하는 거 번뇌를 지우려 하기보다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깨달음으로 번뇌와 고통이 연속인 삶의 본질을 통찰하라는 가르침이 아닐까. 자기 생각이 옳다고 고수하며 일관대게 직진으로 향하는 보수적인 나의 성향 `그랬겠지, 그렇구나'란 단어를 쓰면 갈등도 번뇌도 줄어들었을 텐데. 까탈스럽게 생활했던 지난 시간들이 스치면서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고 정곡을 찌르는 듯 저릿하다.

시끌벅적한 현실세계 나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세상 경쟁하듯 달려온 시간 앞에 나를 잠시 멈춤은 어색하다.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게 집중하는 참선 수행법임에도 온통 머릿속은 더 복잡해진다. 찰나에 스쳐 지나가는 일들 비우려 하면 더욱더 선명하게 떠오르는 현실은 명상의 깨달음을 저지한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했건만 별 특별한 일들도 아니건만 잡생각의 고리를 끓어버리지 못한 머릿속. 어수선하게 엉켜 속을 헤집던 시간은 어느 듯 오감(재물욕, 색욕, 식욕, 수면욕, 명예욕)을 안정시켜 주는 듯 안온해진다.

무엇을 얻기보다는 내려놓기를 위한 수행 오감을 놓지 않으려 움켜쥐고 달려온 조악한 행동과 욕망을 억누르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다.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얻기 위해 긴 여행길에 올라 석가모니의 발자국을 쫓던 붓다(깨달은 자)는 삶의 고통과 괴로움을 바르게 수행하도록 가르침을 전했다. 지금부터라도 붓다의 뜻을 조금씩 스스로 따르기 시작하면 이 또한 안식이지 싶다. 법주사 오는 내내 눈발로 속절없이 번뇌하던 내 마음이 계면쩍어 명상에 또 몰입한다.

처마 끝 마음의 안정과 정화를 시키는 풍경종도 잠이든 한밤, 천년고찰에 내려앉은 설경위로 쏟아지는 불빛 사이로 조선 7대 세조왕이 곤룡포자락을 휘날리면 순회하는 모습이 얼비춘다. 마음의 병과 피부병을 얻어 비접으로 속리산으로 심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찾았던 세조. 문장대 가는 길목 작은 암자 복천암. 그 암자에서 세조는 신미대사로부터 설법을 들은 후 샘물을 마시고는 억눌렸던 마음의 병을 고쳤다고 한다.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오감을 떨쳐버리고 참선에서 오는 힘이 아닐까.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고요한 산사를 깨우는 범종소리가 장엄하게 울려 퍼지는 묘시(卯時) 합장하고 새벽예불법회로 향하는 발걸음이 사뭇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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