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전령사
봄의 전령사
  • 김일복 시인
  • 승인 2024.01.18 19: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김일복 시인
김일복 시인

 

새해가 되면 세계는 각기 다른 시공간에서 새해 복을 기원한다. 그렇게 세상이 부산하게 담금질하는 동안 나는 아무런 계획이 없다.

그래서일까 다른 한 해가 시작할 때쯤 생각나는 게 있다.

찬찬히 그리고 미치도록 보고 싶은 친구가 있다. 아직도 그곳에서 잘 지내는지 궁금해진다.

넉넉한 세상을 품은 친구는 한결같이 일 년의 빈자리를 향기로 채운다.

아무리 세찬 바람이 불어와 혹독한 추위에도 봄은 기어코 찾아온다. 그렇게 겨울 한편에 조심스럽게 피어나는 납매가 내 친구다. 해마다 푸르고 노란빛으로 피어오른다. 누군가 수고한다고 포근하게 안아주면 좋겠다.

납매를 만나려면, 청주의 오지라고 불리는 벌낫 마을에 가면 볼 수 있다.

이른 봄에 꽃을 볼 수 있는 납매는 12월에도 피며, 보통 1월 2월에 핀다. 꽃은 아주 귀엽고 손톱만큼 작다. 노란 꽃으로 안쪽으로는 짙은 자주색이다. 새로운 시작을 전해주는 봄의 전령사다.

조급하게 소전리로 향했다. 사방이 첩첩산중이다. 산 아래를 넘어서자 구름이 감싼 산봉우리가 줄지어 장관을 이룬다.

산골짜기 좁은 길을 한참 걸어가면 마을이 보인다. 그 아래 냇가가 흐르고 둑길을 따라 걷다 보면 나루터 갈림길에서 마주하게 된다. 그 해 가장 먼저 피는 꽃, 바로 납매다.

섣달을 의미하는 납(臘), 매화를 의미하는 매(梅)를 합친 납매꽃이다. 납매꽃을 보기 위해서는 몇 번이고 헛걸음해야 한다.

꽃피는 때를 맞춰 찾아오기란 쉽지 않다. 역시나 오늘도 빈 걸음이다. 봄을 `빵' 터뜨리기에는 아직 이른가 보다.

움츠리고 있던 납매가 꽃 피기 시작하면 노란 봄이 왔음을 알 수 있다.

세상과 새로운 만남의 시작이다. 만남을 통해 얻는 것 중 하나가 그리움이다.

내게 납매 향기는 말할 것도 없이 그리움 자체였다. 섣달그믐에 피는 납매는 그리움으로 이리 일찍 피는지 모르겠다.

`자애'라는 꽃말을 가진 납매는 상큼한 향기로 세상을 덮는다. 나는 하루를 무기력하게 살다가도 뭔가 떠오르게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이 향기이다. 향기는 잊었던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납매 향기는 사람의 향기와도 통한다.

해밝은 사람이 있다. 항상 웃으며 정겨운 마음을 느끼게 한다. 그 사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향기와 빛이 난다. 명랑함과 친근한 향기가 주변을 행복하게 해 준다. 나는 그 사람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에너지가 생긴다. 내가 갖지 못한 웃음을 가진 그는 늘 부러움에 대상이다.

그는 마치 납매꽃 같다. 꽃의 향기는 태어나면서 저절로 타고 난다. 그의 향기도 맡다 보면 상큼한 향을 느낄 수 있다. 그의 말씨, 행동, 풍기는 이미지가 향기로 느껴진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은 꽃을 좋아한다. 꽃에서 나는 향기를 맡고 향기로운 사람이 되고 싶은 이유겠다.

그렇다. 만나면 만날수록 향기를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다.

향기 내는 사람은 그냥 편한 사람, 그냥 좋은 사람, 그냥 함께하고 싶은 사람, 그냥 그냥 물 같은 사람이 아닐까? 새해 아침 봄의 전령사는 아니더라도 나 자신은 어떤 향기를 풍기고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오래 남는 기억을 건드리는 향기가 있다. 그것은 선함이요. 믿음이겠다. 따라서 향기 있는 추억은 언제든 기억되고 기억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나에게도 향기 좋은 봄이 오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