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탁발 3
덕산탁발 3
  • 무각 스님 괴산 청운사 주지
  • 승인 2024.01.18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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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의 목소리
무각 스님  괴산 청운사 주지
무각 스님 괴산 청운사 주지

 

머리 떨구어 언제나 존다.
조는 일 말고 다른 일이 또 내게는 없다.
조는 일 말고 다른 일이 내게 또 없기에
머리 떨구어 언제나 존다.

새하얀 눈으로 덮인 청운사 여여선원은 겨울왕국이 되었습니다. 이 시간에 탁마할 공안은 단도직입형 공안인 무문관 제13칙 덕산탁발(德山托鉢) 3.입니다.

지금까지 방편은 부정적인 뉘앙스로 통용되어 왔습니다. 온전히 어떤 일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대충 급한 불을 끈다는 식으로 임할 때 우리는 이를 임시방편이라고 말하지요. 그렇지만 불교의 방편이라고 하는 것은 전혀 부정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지 않습니다.

방편이란 중생의 수준 즉 근기에 맞추어 이들을 깨달음으로 이끌려고 하는 노력이 바로 방편이지요. 방편은 획일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눈높이에 맞춘 수준별 교육을 말합니다. 마치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면 깨달음에 이르도록 하는 방법 또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대학교수와 초등학생은 수준이 다르듯이 말이지요. 당연히 두 사람에게 적용되는 방법은 달라야만 할 겁니다.

불의 방편이란 눈높이 교육의 정신이 없다면 아마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제대로 읽으려는 감수성도 없으면서 어떤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려고 한다면 아마도 그 상대방은 오히려 자비는커녕 마냥 피곤해 할지도 모릅니다.

방편에 정통한 사람은 최소한 두 가지 전제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하나는 깨달음의 경지에 스스로 이를 수 있어야 할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깨달음으로 이끌려는 상대, 즉 제자의 수준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어야 될 것입니다.

방편에 정통한 사람은 원효 대사도 말씀 하신 것처럼 곧 자리리타를 실현하고 있는 사람 곧 부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스스로 깨달음에 이르고자 하는 이로움을 실천했기에 `自利(자리)'이고, 이 깨달음에 타인도 이를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利他(이타)'라 하겠습니다.

방편에 정통한 사람은 마치 정상에 오르려는 이를 능숙하게 돕고자 하는 노련한 산악 가이드와도 같습니다. 그런데도 만약 가이드 당하고 있는 사람이 의지가 너무 미약하다고 한다면, 그는 거짓말도 기꺼이 할 수 있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의지가 너무 박약한 이런 사람에게 앞으로 정상까지 가려면 2시간도 넘게 걸린다고 하며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말해 버린다면, 아마도 그는 정상에 오르기도 전에 미리 포기해 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이 노련한 가이드는 “앞으로 30분 정도만 더 가면 정상입니다.”라고 말하지요. 이게 바로 방편이라는 말이지요.

아울러 방편이란 스승의 눈높이 가르침으로 깨달음에 이른 사람에게는 또다시 다른 중생을 이끌어야 하는 막중한 책무가 남아있습니다. 불교는 慈悲(maitri-karuna)를 방편으로 하여 드러나는데 자비라고 하면 불쌍하고 어려운 사람에게 베푸는 동정이나 연민을 뜻하며 산스크리트어로 慈悲(maitri- karuna)는 우정을 뜻하는 마이트리(maitri)라는 말과 중생에 대한 연민을 뜻하는 카루나(karuna)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무문관 제13칙 덕산탁발(德山托鉢) 4.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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