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다 친구야!
보고 싶다 친구야!
  • 강석범 청주 복대중 교감
  • 승인 2024.01.17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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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강석범 청주 복대중 교감
강석범 청주 복대중 교감

 

통기타 D코드를 촤르르 긁어내며, 이 노래는 반 박자 쉬고 시작한다. `울고 있나요. 당신은 울고 있나요, 아 ~ 그러나 당신은 행복한 사람. 아직도 남은 별 찾을 수 있는 그렇게 아름다운 두 눈이 있으니~.'

친구는 이 노래를 부를 때면 늘 시선을 허공에 둔다. 사물을 응시하지 않고 초점을 고정하지도 않는다. 나도 친구의 반주에 조용히 따라 부른다.

조동진의 `행복한 사람'이란 곡이다. 원곡 가수 음색 자체가 워낙 기교 없이 순수해 마치 `시 낭송' 같은 곡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친구는 유독 이 노래를 부를 때면 원곡 가수에 빙의하듯 조금은 슬프게, 조금 더 담백하게, 때론 처량한 느낌마저 들게 부른다.

고등학교 때부터 우린 같은 학교 미술부 친구로, 미술학원 친구로 허구한 날 붙어다녔다. 대학까지 같은 학교 미술과에 진학했고 심지어 군대 훈련소도 같은 날 같은 장소에 입소했다. 훈련소에서도 틈만 나면 만나 서로 햇볕에 그을린 얼굴을 보며 키득거렸다.

고2 어느 날. 화실에서 무료하게 4B연필로 석고소묘를 그어대던 중 친구와 나는 비밀스런 눈빛을 교환한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둘은 살며시 화실을 빠져나왔다.

막걸리 두 병에 새우깡 한 봉지, 둘은 화실 옆 초등학교 건물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지금 기억으로는 외부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중간쯤에 자리 잡고 호기 가득한 얼굴로 대학 문제며 인생 문제며 마치 소크라테스인 양 나름 치열한 인생관을 펼쳤다.

그때 했던 얘기 중에 일반 미대에 진학해 나중에 밥벌이가 힘들면 어쩌지? 하면서 사범대도 선택지로 올려두었던 기억이 있다. 나도 친구도 장남이었고, 친구는 특히 외동아들이기도 했다. 그런 가정환경이 사범대라는 선택지를 고등학교 때부터 잠재적 목적으로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결론도 못 낸 토론을 뒤로하고 우리는 얼큰(?)한 취기로 살짝 화실에 기어들어 가 저만치 구석에서 태연히 그림을 완성했다. 당시 화실 선생님께서 모른 척해주신 건지, 정말 몰랐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때르르릉~' 휴대폰에 친구 이름이 뜬다. “한 교장 오랜만이다. 잘 지내? 무슨 일 있어?” 내 질문이 우스웠는지 껄껄껄 웃던 친구는 “일은 뭐가 있어. 그냥 목소리 들으려 전화한겨~, 오늘 출근이라 교장실서 차 한잔하다가 생각나서….”

지난주 내가 학교에 일찍 출근해 조동진 노래를 듣다 친구에게 톡을 했었는데 친구도 아마 비슷한 감정으로 전화한 모양이다.

친구의 발령지가 경기도여서 우린 자연스레 추억에 남아있는 `친구'란 이름으로 지낸다. 삶의 지점이 거리가 멀면 참 만나기 쉽지 않다. 오죽하면 `이웃사촌'이란 말이 있을까….

비록 전화 통화지만 이제 우리의 대화는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많이 변했다. “아픈 데는 없지? 애들은? 집사람은? 퇴임이 언제지?” 마지막 대화는 늘 `건강'이다. “아프지 말고 건강관리 잘해~ 연금 오래 타야지~” 하하하.

내 친구는 경기도 규모 큰 중학교 교장 선생님이시다. 인물 좋고 인상 좋은 모습이 교장 선생님 직함과 잘 어울릴 거라 생각된다. “한 교장 큰 학교 경영하느라 힘들지?” 물었더니, “아니야~ 괜찮어, 교감 선생님들이 힘들지~.” 친구는 내가 아직 교감이니 위로 겸 덕담을 건넨다.

목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부드럽다. 지금도 통기타를 가끔 만지는지 모르겠네? `보고 싶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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