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네로 가자
정희네로 가자
  • 백범준 작명철학원 해우소 원장
  • 승인 2024.01.17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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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백범준 작명철학원 해우소 원장
백범준 작명철학원 해우소 원장

 

TV로 뉴스도 보지 않는 필자가 그것도 드라마를 게다가 종영 된지 5년이 넘은 드라마를 손수 찾아 볼일은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찾았고 보았다.

1화부터 16화까지 3일이 소요된 전편의 정주행이었다.

`나의 아저씨'

방영당시에는 드라마에 관한 지인들의 대화에 끼지 못했으나 구태여 끼고 싶지 않았고 그래도 아쉬울 것 없었다. 뻔하디 뻔한 안 봐도 드라마인 그런 류의 하나일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보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찾아봐야만 했다. 드라마의 남자주인공이 최근 스스로 세연(世緣)을 끊은 그이여서였을까. 그가 회자되니 이 드라마도 회자됐다. 그래서였을까. 아무튼 봐야만 할 것 같았다.

선택은 옳았다. 보지 않았으면 후회할 뻔했다. 시놉시스와 로그라인은 드라마를 전혀 대변하지 못했다. 안 봐도 드라마라는 말은 `나의 아저씨'와는 무관한 말이다. 뻔할 수도 있지만 뻔하지만은 않은 이야기다. 사람 냄새 진동하는 사람 사는 이야기다. 무심코 보면 가까이에는 없어 보이나 유심히 살피면 가까이에 하나쯤은 꼭 있을 사람들의 이야기. 저마다의 삶의 무게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짊어지고 사는 사람들. 잊고 싶은 상처위에 잊기 힘든 상처가 덧씌워진 사람들. 그들의 삶의 무게는 스스로 감내해야 할 업보일 뿐 극 내내 체감적인 감량은 없어 보인다. 거칠었던 과거는 거칠게 우울한 과거는 우울하게 드러난다. 가감도 없다. 아무도 모르면 아무 일도 아니었을 그래서 아무도 몰랐으면 했던 일들도 끝끝내 드러난다. 그런 일들에 대한 가해자와 피해자는 특정하기 모호하고 그 경계는 불분명하다. 끝끝내 상계되지 못한 빚은 스스로의 채무이자 채권으로 남는다. 서로가 서로에 대한 가해자이며 또한 피해자이다.

후계동 사람들과 그들의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다. 주인공인 박동훈 (故 이선균)과 지금은 청소방을 인수받은 한때는 천재소리까지 들으며 촉망받던 전직 영화감독인 동생 기훈. 그와 함께 계단을 쓸고 토를 치우는 대기업 간부였던 형 상훈. 그들의 선후배와 친구인 모텔에 수건을 대는 전직 은행 부행장. 자동차 연구소 소장이었으나 지금은 미꾸라지 수입업자. 제약회사 이사였던 현직 백수. 운동장에서는 별것 아닌 의견차로 소리 높여 싸우다가도 그 중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부리나케 달려오는 후계조기축구회원들.

이들은 후계동에서 나고 자라 그곳을 떠난 적 없는 이 동네 토박이들이다. 아니 잠시 떠났을지라도 다시금 돌아온다. 그들을 당기는 힘. 귀소본능. 그 힘의 중심에는 동네술집 `정희네'가 있다.

`정희네'의 주인인 정희도 후계동 토박이다. 그녀도 그 곳을 잠시 떠났었으나 다시 돌아왔다. 그들은 하루 일과를 마치면 약속이랄 것도 없이 정희네로 모여든다.

술잔 사이 오가는 그들의 개인사는 털어놓는 순간 그들 모두의 문제이자 과제이자 숙제가 된다. 누구하나의 기쁜 일에는 잔치집이 되기도 누구하나의 슬픔으로 초상집이 되기도 하는 그런 곳이다. 희로애락을 얘기하며 희로애락을 담아 잔을 부딪친다. 슬픔을 잔에 가득 채워 술과 함께 비운다. “후계! 후계! 비우게” 그들의 건배사다.

그러나 후계동 사람이 아닌 기훈의 지인인 영화배우 유라의 눈에는 그런 그들은 그저 `망가진 사람들'일 뿐이었다. 처음에는 그랬다. 처음에만 그랬다. “망해도 괜찮은 거구나.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망가져도 행복할 수 있구나” 자신의 삶이 구겨졌다고 생각했던 그녀도 그들을 보며 그들의 삶속에서 끝내는 펴졌고 위안을 받는다.

오늘저녁은 내 독한 사정도 술잔 기울이다 보면 그저 농담처럼 희석되는 나만의 `정희네'로 갈 것이다. 일면식도 없지만 아득한 먼 곳으로 먼저 떠나간 그이를 위해 잔도 채울 것이다. 왠지 오늘은 그런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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