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 피고 지는 꽃 `동백'
세 번 피고 지는 꽃 `동백'
  • 이연 꽃차소물리에
  • 승인 2024.01.16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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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이연 꽃차소물리에
이연 꽃차소물리에

 

나무에서 한 번, 땅 위에서 또 한 번, 그렇게 두 번 피어난다는 동백꽃.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또다시 피어나 세 번을 꽃피운단다. 꽃이 한 번 피고 지기도 힘든데 세 번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남해 여행길, 작은 어촌마을을 지날 때였다. 진한 초록과 빨강의 선명한 조화로움에 감탄하며 동백나무를 바라보다 무심코 나무 아래를 바라보게 되었다. “아! 저거였구나. 신음처럼 짧은 탄성이 나왔다. 땅 위에도 붉은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차를 멈추고 나무 아래에 섰다. 툭, 무심한 듯 꽃 한 송이 발끝에 떨어진다. 내 마음에도 어느새 붉게 동백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대부분 꽃이 꽃잎이 하나하나 떨어져 지는 것과 다르게 동백은 꽃잎이 온전한 그대로 한 송이씩 무심한 듯 후드득 툭, 나무 아래로 낙화한다. 한 송이, 두 송이 나무에서 생을 다한 꽃들이 온전하게 땅 위에 내려앉으니 그리도 아름답게 꽃을 피울 수밖에. 땅 위의 붉은 꽃들을 넋 놓고 바라보며 동백꽃은 확실하게 세 번 피고 지는 꽃이란 걸 인정할 수밖에 없는 풍경이었다.

따뜻한 계절이 아닌 추운 겨울에 피는 꽃이라 동백이라 했던가. 인고의 계절을 견디며 피어나는 꽃이라 향기도 진하게 날 것 같지만 사실 동백꽃에는 향기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향기를 대신할 꿀이 풍부해 동박새들을 불러 모은단다. 동백꽃은 향기가 아닌 꿀로 새를 유인하는 조매화(鳥媒花)다. 사람들이 동백꽃의 향기라 느끼는 것은 어쩌면 꿀의 향기가 아닐까 싶다.

나는 지금 인고의 시간을 지나 내게로 온 동백꽃을 바라보고 있다. 그 붉은 꽃을 차로 덖어 내 방식으로 세 번째 꽃을 피워볼 생각이다. 먼저 팬 온도를 저온으로 달구고 꽃들을 나란히 올려놓는다. 팬 온도와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높은 열로 차를 덖으면 색이 곱지 않고 자칫하면 꽃잎이 타 버릴 수 있다. 선홍빛 꽃잎이 생기를 잃어가며 서서히 변하고 있다. 검붉은 색으로 탈바꿈하는 꽃잎의 색이 오묘하다.

이번에는 자신과의 줄다리기다. 잠시도 한눈을 팔아서도 다른 생각에 정신을 놓아서도 안 된다. 그렇게 서서히 변해가는 꽃을 바라보며 식힘과 덖음을 반복한다. 통꽃 그대로 차로 만들기 때문에 긴 시간이 소요된다. 마지막으로 꼭 거쳐야 하는 고온 덖음으로 향 매김을 한다. 이젠 마무리 시간이다. 지금부터는 기다림의 시간이다. 혹시라도 모를 수분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어 차가 부패할까 오랜 시간 미열에 잠을 재운다.

잠을 재운 차의 향이 깊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시공간을 넘어 다시 남해의 작은 어촌마을 동백나무 아래에 섰다. 태어나 처음으로 꽃이 세 번 피고 지는 것을 경험하게 해준 그곳에는 여전히 찬바람을 벗 삼아 동백이 흐드러지게 피고 있었다. 꽃은 따듯한 계절에만 피는 것이라고 그게 진리라고 확실하게 믿고 살았던 나의 무지와 편견을 깨트려준 나무가 동백꽃이다. 벌도 나비도 없는 추운 계절에 꽃을 피우려니 얼마나 고단했을까. 그래서 향기를 대신할 꿀을 만들어 동박새를 불러들였을 것이다. 동백나무의 강인함과 자연에 순응하는 지혜로움이 경이롭기만 하다. `그 누보다도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동백꽃의 꽃말처럼 고단한 세상살이에 지쳐 얼어붙은 마음들을 녹여줄 온기를 지닌 나무가 동백나무가 아닐까 싶다.

동백꽃 차는 항산화물질이 풍부하여 피를 맑게 해주고 뭉친 어혈을 풀어주기도 하며 인후통에도 효과가 있어 목 건강에도 좋아 따듯하게 마시면 좋다. 꽃차를 우릴 때는 유리 주전자가 제격이다. 그래야 꽃이 피어나고 찻물이 우러나는 아름다움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를 따르며 달곰한 향기에 행복하고, 차를 마시며 마음에 찾아드는 평화에 감사한다. 인고의 시간을 견디며 꽃을 피워 사람들에게 희망과 온기를 주는 저 동백나무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희망과 따스한 온기를 지닌 그런 사람으로 기억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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