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의 피리 소리
변방의 피리 소리
  •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24.01.15 19: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 중국어과 교수

꽃이며 풀이며 잎이 다 사그러진 겨울은 삭막하게 마련이다. 더구나 날씨가 더 추운 북쪽 변방은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시간적으로 겨울인 데에 공간적으로 변방이라는 느낌이 얹어지기 때문이다.

당(唐)의 시인 고적(高適)이 한겨울 북쪽 어느 변방에서 느낀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변방의 피리소리(塞上聞吹笛)

雪淨胡天牧馬還(설정호천목마환) 호땅 하늘 눈 그쳐 깨끗한데 방목하던 말 돌아오고
月明羌笛戍樓聞(월명강적수루문) 달은 밝고 초소에 오랑캐 피리 소리 들리네
借問梅花何處落(차문매화하처락) 매화는 어디로 떨어졌느냐고 물으니
風吹一夜滿關山(풍취일야만관산) 바람에 떨어져 하룻밤에 관산 가득 덮었다고 하네

시인의 시선은 호(胡)라고 불리는 오랑캐 땅과 붙어 있는 변방에 닿아 있다.

시인이 어떤 연유로 그곳을 떠돈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시인이 그려 낸 그곳 풍광은 생생하기 그지없다. 눈이 내리다 그쳐 말게 갠 하늘이며, 초지에서 풀을 뜯다가 날 저물어 우리로 돌아오는 말들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으로 손색이 없다.

시간적 배경이 삭막한 겨울인 것을 감안하면, 그 장면은 더욱 선명해진다. 겨울 변방의 삭막함은 도무지 느껴지지 않는 표현이다. 한밤 변방의 초소 모습도 삭막하기는커녕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밝은 달이 조명을 맡고 국경 건너 오랑캐 땅에서 들려 오는 피리 소리가 음향을 담당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거기서 들은 피리 소리는 단순히 피리 소리로 그치지 않는다.

곡조의 제목을 알고 있는 시인에게 그것은 하나의 메시지로 전해진다. 매화가 필 리 없는 한겨울에 등장한 매화는 낙매화(梅花)라는 피리 곡조에서 취한 것이고, 변방과 멀리 떨어진 관산(關山)의 달이 떠오른 것 역시 관산월(關山月)이라는 피리 곡조를 듣고 가져다 놓은 것이다.

변방 초소에서 들리는 오랑캐 땅 피리 소리는 무섭기도 할 법한데, 시인은 이것을 푸근한 고향 풍광을 그곳에 옮겨다 놓는 기재로 활용하였으니 그 발상의 기발함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시인은 겨울 변방은 삭막하지 않다고 기염을 토하지만, 그럴수록 그 삭막함은 더욱 부각되고 있으니 시인의 반어와 역설은 참으로 탁월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희망이 없다고 느끼는 지점이 곧 희망이 생기는 곳이다. 겨울 변방의 삭막함은 달이 떠오르고 매화가 핀다는 강력한 신호이다. 사막에서 모래를 볼 것인지 꽃을 볼 것인지는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