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여 편히 잠들게나
친구여 편히 잠들게나
  • 심억수 시인
  • 승인 2024.01.14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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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엿보기
심억수 시인
심억수 시인

 

친구의 영면에 가슴이 먹먹하다. 이제 겨우 일흔하나다. 갑작스러운 친구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죽음을 향해 가는 과정을 삶이라 부른다. 삶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다. 삶은 개인의 궤적이나 가치관에 따라 다르다.

고인이 된 친구는 무탈하게 직장을 다니던 중 감전 사고로 오른팔을 잃었다. 상실감에 방황하며 눈물 담긴 술잔을 놓지 않았다. 그때부터 친구의 마음이 피폐해졌다. 친구의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었겠는가마는 친구를 다독이며 함께 술독에 빠지기도 했었다.

죽음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맞이한다. 살면서 많은 죽음과 만났다. 초등학교 때 할아버지의 죽음, 중학교 때 외할머니의 죽음, 고등학교 때 이모의 죽음, 군인 시절 선임병의 죽음, 대학교 때 고모의 죽음, 직장 생활 중 동료 선 후배와 친구 부모님의 죽음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을 겪으면서도 철없이 초연했던 마음이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친구의 영면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한다.

아버님이 소천한 후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읽었던 `죽음이란 무엇인가' 예일대 철학과 교수 셸리 케이건이 펴낸 책을 다시 펼쳐 본다.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죽음의 본질과 삶의 의미를 고찰한 도서다. 죽음에 관한 모든 것을 이성과 논리를 통해 파헤쳐놓았다.

죽음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들을 다루고 있다. 죽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죽을 수밖에 없는 나라는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 영원한 삶은 가능한가. 영혼은 죽은 뒤에도 계속 존재하는가 등 개념적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이끌기 위해 죽음은 나쁜 것인가. 영생은 좋은 것인가. 우리는 왜 경험하지 못한 죽음에 두려워하는가에 대한 현실적 질문을 던진다. 질문에 대한 철학적 논의를 독자 스스로 생각하게 한다. 죽음을 육체적, 영혼적, 인격적 관점의 시선으로 바꿔가며 서술한 내용이 마음을 흔든다.

인간이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라면 우리의 삶은 무의미하고 재미없을 것이다. 삶이 소중한 이유는 언젠가 끝나기 때문이다. 삶에 끝이 있다고 생각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인생이다. 사후의 세계가 있다고 한들 아무 소용이 없다. 내가 죽고 난 이후에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인간은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며 산다. 하루의 시간이 가치 있는 삶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20년 전 어느 날 친구가 퇴직하겠단다. 나는 친구에게 정년까지 직장 생활을 해야 한다고 권유했다. 그러나 친구는 직장에 누가 되기 싫다며 조기퇴직을 했다. 퇴직 후 시골로 들어가 염소를 키우며 세상을 향해 몸부림치던 친구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열심히 자신의 삶을 가꾸던 친구의 부고에 인생무상함이 밀려온다.

삶이란 죽음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완성된다고 했다. 삶의 가치는 살아가는 그 자체가 아니다. 삶 속에 채워지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의 총체적인 집합체다. 그러기에 삶이나 죽음 자체가 아닌 죽기 전까지 나의 의미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한 과정에 더욱 충실해야겠다.

인간은 늙어 죽는 것이 아니라 병들어 죽는다. 친구의 죽음이 내 삶의 본질을 깨닫게 한다. 내 삶을 괴롭히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다. 건강한 삶을 위해 혼자 지내는 삶보다는 더불어 살아가야겠다. 친구여 이제 병 없는 세상에서 편히 잠들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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