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의 무한 공간 비상(靑龍飛上)
청룡의 무한 공간 비상(靑龍飛上)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4.01.14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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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포럼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우리 세대는 만나면 다음과 같은 걱정을 한다. 요즘 세대는 결혼도 안하고, 결혼해도 애 안 낳고, 친구도 별로 안 사귄다. 보편 가치, 공유문화와 동떨어진 덕후 문화가 기승을 부리고 있으며, 자폐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아이를 낳지 않으니 나라의 존폐가 걱정되고, 사람들과 어울려 살지 못하니 청년 자살률이 높아지고, 범죄가 흉악하고 잔혹해지며, 아무런 동기 없이 사람을 죽이는 등 사회 병리현상이 심각하다.

우리 세대는 경험이 풍부하고 그래서 인생, 사회, 역사 등에 대한 가치관이 서 있다. 우리 세대는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상식, 통념, 실재 등을 철석같이 믿는다. 바다에 떠 있는 배들이 닻줄을 내려 흔들리는 가운데 안정을 유지하는 것처럼 통념이나 상식, 전통이 사회를 안정시켜주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 세대가 보면 요즘 젊은이들은 닻줄 내릴 곳 없는 배처럼 표류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심하게 동요하고 혼란스러워도 저변에는 공통의 가치와 시대정신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사회가 유지될 수 있는데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이런 이해가 결여되어 있어 근원적으로 불안정하다.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는 우리가 금과옥조처럼 믿고 의지하는 사회적 통념이나 상식, 전통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지 않다. 학생들과 토론을 하거나 드라마를 보면 젊은이들은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갖고 있다. 우리가 사회 통념을 왜 받아들여야 하지? 사회적 계급 구조에 편입되어야만 하는 건가? 개성을 버리고 조직의 일원으로 살아야 되나? 이들의 이런 의문은 우리 세대가 닻을 내리고 사는 보편적 상식, 관습, 전통이 왜 필요한지를 묻고 있다.

이들은 원래 물 위에 떠서 이리저리 표류하는 걸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 동요와 격랑을 잠재우기 위해 상식과 전통에 닻줄을 내리려 하지 않는다. 배의 흔들림에 익숙한 사람이 멀미약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처럼 세상이 원래 흔들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관습, 상식, 보편적 규범이라는 치료제를 금과옥조처럼 떠받들 필요가 없다.

젊은이들은 전통이나 상식, 보편적 규범의 우위성을 철석같이 믿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그들은 그게 국가를 침몰시킬 만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 세대와는 다른 세계에 살 뿐이다. 그들은 세상이 불안한 현상들과 그 현상들에 안정성을 부여해주는 배후의 본질이나 실재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21세기의 시대정신은 불안한 현상들의 배후로 뚫고 들어가 사회현상의 본질이나 핵심을 파악해서 그것으로 세상을 구원할 필요도 없고 구원되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 9컷의 그림 중 원본(original)은 없다. 하나가 원본이고 나머지가 복사본(copy)이 아니라 원본 자체가 없다. 원본과 복사본 구분은 플라톤을 비롯한 전통사상가들이 설정해 놓은 미신일 뿐이다.

우리는 복사본을 실재처럼 보이게 해주는 원본을 가지고 복제된 세상을 구원하려한다. 하지만 요즘 세대는 원본 없는 복사본들만의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 이들이 그리고 있는 세상은 우리가 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실재(real) 세계가 아니다. 이들의 세상은 물리적인 경계나 한계를 넘어서 있는 무한한 복제의 공간, 가상의 공간, 문화의 공간이다. 그리고 이들의 사고는 한계에 갇혀 있지 않다. 이들은 무한 픽션의 세계를 새롭게 만들어가는 개척자의 삶을 산다. 이들이 살고 있는 세계에서 우리나라는 이미 문화강국이다. 이들의 생각에 지정학적으로 약소국일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이 처한 암울한 미래는 없다. 무한히 펼쳐진 상상력의 공간에 개척 가능한 미지의 영토가 널려 있을 뿐이다.

청룡의 새해, 나 같이 나이 든 사람들의 기우로 젊은이들의 무한 상상력을 울타리 안에 가두지 말아야겠다. 용(龍)은 닻줄을 끊고 무한 허공의 세계를 날아다녀야 진가가 발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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