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천외하게 괴상망측한데 기이하게 마음을 울리는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가 2023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7관왕을 휩쓸었다. 영화 속 주인공은 세탁소를 운영하며 팍팍한 미국 이민살이, 자녀문제, 남편과의 이혼문제, 가족부양 문제 등을 해결하느라 거의 투사의 삶을 살아간다. 자신의 의지와 노력을 무력하게 만드는 사건들 혹은 원치 않는 일들에 휘말려 있는 비극적 상황을 헤쳐나가는 여주인공의 모습이 지금 여기 내가 발 딛고 살아가는 현장 같은 기시감이 든다.
#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날까?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날까?'라고 자신의 힘든 상황을 한탄할 수 있다. 그런데 통계적으로 보면 일반인 2명 중 1명은 재난적 외상(생명을 위협하는 사고나 질병, 타인으로부터의 위협적 공격, 대인관계로 인한 심리적 외상)을 겪는다. 따라서 우리들 2명 중 1명은 재난적 외상으로부터의 생존자인 셈이다. 실제로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이 통계가 맞는지 틀린지 확인할 수 있다.
내 삶을 위협하는 재난적 외상경험에 직면했을 때 종종 터널시야에 갇히게 된다. 터널시야는 상황의 어두운 측면만 바라보게 하고 주변의 다른 상황을 보지 못하게 하는 눈가리개 역할을 한다. 재난적 외상 상황이라는 터널은 칠흑같이 캄캄한데다 구불구불하기까지 하여 그 구부러진 터널의 코너 끝에 이를 때까지 빛이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주변을 비관적으로 평가하게 되며 자신에게는 항상 나쁜 일이 일어난다는 듯 행동하게 된다. 이럴 때 선택하기 쉽고 매력적인 삶의 길이 있다. 어차피 세상은 내 편이 아니라며 자신의 노력과 삶과 사람들을 냉소하고 비난하고 경멸하는 것이다. 이는 누구나 지금 당장 선택할 수 할 수 있는 아주 쉬운 길이다.
# 다정한 몰입의 길
삶에 대한 냉소와 비관은 무엇을 남길까. 냉소와 비관은 주변 사람의 생의 에너지마저 소멸시킨다. 이 일이, 그 업무가, 당신의 어려움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는 극강의 냉소주의와 비관주의로 길, 쉬운 길로 들어선 사람들의 삶에 남는 것은 허무밖에 없을 것이다.
삶에서 주어지는 재난적 외상을 내가 선택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어떤 삶의 비극적 외상에서도 나의 삶을 대하는 태도,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 세상의 비극과 불의의 사건들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내가 결정할 수 있다. 주어진 상황에서 나의 태도를 선택하고 나만의 방식을 선택하는 자유는 내가 가지고 있다. 따라서 재난적 외상 상황에서 쉬운 길을 택하기보다 조금 어려운 길을 선택할 수 있다.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해서 이런 것들을 감내해야 하는지 원망스러운 선택을 하는 것을 스스로 할 수 있다. 행복감과 삶의 질을 높이는 주요 원천이`몰입(flow)'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몰입은 내 능력치보다 더 도전적이고 어려운 과제를 하려고 할 때만 경험할 수 있다. 삶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목표를 정하고 뚝심 있게 밀고 나갈 때 몰입의 경험이 주어진다. 쉬운 길에서는 경험할 수 없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 여주인공은 다음의 메시지를 듣고 세상과 가족과 화해한다. “내가 유일하게 아는 것은 우리 모두 다정해야(친절해야, be kind) 한다는 거야. 다정하게 대해 줘. 특히 우리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를 때라면 말이야.”
나의 실수나 혹은 나의 자의였지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재난적 순간이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 원치 않는 삶이라고 비관하거나 냉소하기를 그만두고 이 난이도 높은 삶에 몰입하는 것, 조금 어려운 길을 선택하는 것이 우리에게 더 어울릴 것이다. 다만 그 어떠한 경우에도 삶에 대한 다정함과 타인에 대한 친절함을 지닌 채 말이다. 특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는 혼란하고 힘든 지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