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처마는 이유가 있다
깊은 처마는 이유가 있다
  • 이영숙 시인
  • 승인 2024.01.04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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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이영숙 시인
이영숙 시인

 

산모퉁이 널브러진 상수리나무 잎을 푹푹 밟으며 지나는 중이다. 유년의 추억이 밑바탕으로 깔린 곳, 번듯한 길을 놔두고 일부러 추억에 젖은 흙길을 부스럭거리며 걷는다. 인근 교인들에겐 비포장 울퉁불퉁한 이 길이 빨리 빠져나갈 지름길인 듯 연신 차들이 꼬리를 문다. 그럴 때마다 힘껏 몸을 오므리고 가장자리로 비켜선다. 차량 행렬이 더는 보이지 않자 잠시 허수아비처럼 우두커니 두 팔 벌려 온몸 가득 숲을 들이킨다. 알싸한 솔잎과 참나무 잎의 정겨움이 폐부 깊이 스민다.

흑백으로 펼쳐지는 고향 마을의 저녁나절 풍경, 밥 타는 냄새, 된장국 냄새, 두붓집 마당에서 밤늦도록 딱지치기하던 머슴애들 모습이 저녁놀처럼 퍼진다.등하굣길 비나 눈을 만나면 으레 종옥이네 문간방 긴 처마 밑에서 머물다 가곤 했다. 그러면 종옥이 엄마는 언 몸 녹이라며 가마솥에서 따끈한 숭늉 한 사발을 떠 오셨다. 이따금 삶은 고구마와 옥수수도 내주셨다. 이제는 강산이 몇 번 바뀌어 그 앞으로 흐르던 남지 내는 자그마한 도랑으로 변했고 종옥이네 집터에 고층아파트가 들어서고 그 머물던 처마 자리를 찾아 내가 살고 있으니 참으로 격세지감이다.

처마는 첨하? 하(下)가 연음화된 우리말이다. 지붕이 도리 밖으로 내민 부분으로 햇빛을 조절하고 비나 눈으로부터 외벽을 보호하는 역할이다. 오늘날 오래된 목조 고택들이 긴 수명을 유지하는 것은 이 처마 덕분이다. 여름에는 그늘을 주고 겨울에는 따스함을 주니 과학적이고도 자연적인 공법이다. 나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우리는 그 긴 처마에 얽힌 아름다운 빚이 있다. 눈과 비를 피하며 오랜 시간 하늘에 눈을 걸던 정서, 처마에 매달린 수정 같은 고드름을 간식으로 따먹던 그 가난하지만 풍요롭던 정서를 가지런한 유산으로 받은 까닭이다.

고즈넉한 오후, 책방에 앉아 시집을 읽는 중에 처마를 기억하는 시인을 만나 가슴 온도가 올라간다. 처마,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그리운 낱말이다. 김남권 시인은 「차마, 처마」라는 시를 통해 처마의 인문학적 기능을 표현했다.



처마는 사랑이다/내가 높은 빌딩도 펜트하우스도/부러워하지 않는 이유는/처마가 없기 때문이다//처마가 없는 집은 인정머리가 없고 처마가 없는 집은 그늘이 없다.

(김남권, 「차마, 처마」 부분)



지금은 도심 속 처마를 찾아보기 힘든 시대이다. 도시 문명과 바꾼 공법이니 어쩌랴, 한옥의 깊은 처마엔 다 그 이유가 있다. 시원하고 양지바른 처마 밑, 아날로그로 흐르던 그 옛날의 푸근한 인정이 그립다. 갈수록 사막화되는 도시, 이제 어디에서 우물을 길어야 할까. 물리적 공간의 처마는 사라졌지만, 가슴이라도 아늑한 처마 하나 드리우고 정서만은 아날로그로 흘러야겠다. 누구라도 인생의 눈과 비, 햇빛을 피해 잠시 머물다 갈 수 있는 처마, 진심으로 응원하는 말이어도 좋고 치유하는 글이라도 좋다. 가슴 속 처마라도 넉넉히 내고 사는 인정만이 잃어버린 처마를 대신하는 길이며 삭막한 도심 속 에어포켓을 확장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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