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 눕다
숲에 눕다
  • 연서진 시인
  • 승인 2024.01.04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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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연서진 시인
연서진 시인

 

창밖을 보니 밤새 내린 눈이 소복이 쌓였다. 어릴 적 보았던 솜이불처럼 따스해 보인다. 아파트 사이로 보이는 산도 온통 하얗다.

얼마 남지 않은 올해는 눈으로 뒤덮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문득 숲이 떠올랐다. 푸른 숲이….

가을이 끝나갈 무렵에 조령산을 찾았다. 평일이라 그런지 한가했다. 드문드문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모습은 활기차 보였다. 산이 주는 에너지 같았다.

얼마 전까지도 붉게 타오르던 단풍이 발밑에서 요란했다. 헐벗은 나뭇가지는 겨울이 다가왔음을 알려주는 듯했다.

가을이 아쉬워 낙엽이 쌓인 곳으로 걸어갔다. 바스락바스락 낙엽이 부서지며 가을이 가고 있다.

3관문으로 오르는 길은 완만한 1관문으로 가는 길에 비해 조금은 높지막했다. 평지만 걷던 나는 느릿느릿 걸었다. 바닥난 체력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다행히 바람은 잔잔하고 노란 햇살까지 걷기 좋았다.

3관문 성에 도착했다. 넓은 잔디밭에 쉼을 할 수 있는 나무 의자가 더러 놓여 있다. 쉴 곳을 찾는 나의 눈에 조금 떨어진 외곽 숲에 평상이 보였다.

아뿔싸, 아무도 찾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여기저기 온통 하얀 새똥이 묻어 있다.

다른 곳으로 갈까 망설이다 조금 덜 묻은 구석에 앉았다. 뽀로롱 뽀로롱 새소리가 들린다. 숲에서 듣는 새소리에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새가 보일까 싶은 마음에 고개 들어 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하늘이 보인다. 문득 눕고 싶었다. 누워 바라보는 기분은 어떨까? 평상엔 새똥이 가득하고 마음은 누우라 하고… 등이 더럽혀질 거라는 생각도 잠시, 마음이 시키는 대로 누워 버렸다.

눈앞에 신세계가 펼쳐졌다. 푸른 하늘이, 햇살이 얼굴 위로 쏟아진다. 언젠가 3D 안경을 쓰고 보았던 영화 아바타가 생각났다.

아름다운 숲이 보이고 눈앞에 나비와 새가 날았다. 손으로 잡을 수 있을 만큼 가까웠다. 나도 모르게 손을 펼쳤다.

영화는 끝이 났고 아름다운 기억은 아직도 잔불처럼 남아 있었다. 첫 아바타가 탄생하고 후속편이 나올 때까지 강산도 변하는 10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다. 아름다운 자연의 대서사시에 몰두했을 감독의 세계관에 찬사를 보내고 싶었다.

곧게 뻗은 잣나무와 이름 모를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푸르고 시리도록 맑았다. 커다란 나무를 타고 하늘 향해 오르는 넝쿨과 이끼는 웅장하고 아름답다. 마치 하늘과 닿은 것 같다. 나뭇잎 사이로 노란 햇살이 들어와 가만히 눈을 감았다. 닿지도 않을 높은 허공을 향해 손을 휘적거렸다. 영화를 보던 그때처럼…

고개를 들고 수도 없이 보았을 하늘, 그리고 산과 숲, 똑같은 하늘이고 똑같은 나무와 숲이었을 거였다. 선명하게 닿았다 떨어진 새의 날갯짓, 나무를 휘감은 초록 이끼, 나뭇잎을 타고 내리던 햇살, 뚜렷하게 가슴에 담고 또 담았다. 구석구석 몸집을 부풀리고 있던 상념이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등이 시리기 시작했다. 버틸 수 있을 만큼 버티다 일어섰다. 몸은 써늘하고 덜덜 떨려 온다.

하지만 숲에서 들어 마시는 공기는 몹시 시원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숲이 따라왔다.

많은 변화가 있었던 올 한 해, 생각해 보니 나쁜 일보다 좋은 일들이 많았다. 나도 가족들도 안정을 찾아간다. 그저 감사할 하루하루다. 겨울이 시작되고 한 번도 숲을 찾지 못했다. 오늘처럼 눈 쌓인 숲은 어떨까? 나무도 하늘도 여전할까? 새들은 아직도 노래하고 있을까? 숲이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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