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因緣)
인연(因緣)
  • 백범준 작명철학원 해우소 원장
  • 승인 2024.01.03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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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백범준 작명철학원 해우소 원장
백범준 작명철학원 해우소 원장

 

필자를 찾아와 상담 받는 분들 근심의 3할은 인간관계에 관한 것이다. 좋아서가 아니라 당연히 나빠서다. 인간(人間)이라는 단어는 사람`사이'라는 뜻이다.

인간사(人間事)는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 사이에 일도 있고 돈도 있고 사랑도 있다. 그 사이에서 재산도 쌓고 인맥도 쌓고 정도 쌓는다. 그 사이에는 욕심도 있다. 넘지 말아야하는 선도 존재한다. 이해타산을 위한 주판알은 지금도 튕겨지고 있다. 안전거리를 지키지 못하거나 서로의 셈법이 다르면 사고가 나고 탈이 난다. 손에 무어라도 쥐어 보려다 멱살도 쥐고 머리채도 쥔다. 그래서 어려운 것이고 그래서 서러운 것이고 그러니까 더러운 것이다.

애당초 맞을 리도 없는 톱니가 맞물려 돌다보니 삐끗하고 삐걱되다가 끝에는 삑사리가 난다. 그러니까 불협화음은 인간관계에서 날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소리다. 그러나 불협화음 상대가 오늘부로 당장 안 봐도 무방한 생판 남이면 몰라도 부부나 형제자매 또는 부모자식일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가족의 연(緣)이라는 것은 칼로 무 자르듯 자르기도 어렵다. 깔끔하게 잘리지도 않는다. 골이 깊어져 얼굴 마주보기도 발자국 소리도 숨 쉬는 소리마저도 듣기 힘든 상황이 되면 잠시 떨어져 살아보기를 권한다. 그러나 이것은 일시적 해소법 일뿐 원천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찰나(刹那)는 눈 한 번 깜짝할 사이라는 뜻이다. 손가락을 한 번 튕기는 시간은 탄지(彈指)라 한다. 순식간(瞬息間)은 눈 깜짝일 순(瞬)과 숨 쉴 식(息)이 합쳐진 단어다. 눈 한번 깜빡이고 숨 한번 들이쉬는 짧은 시간이다. 이와 반대로 겁(劫)이라는 것은 길고긴 시간적 개념이다. 불교와 힌두교적 관점의 시간개념인데 겁(劫, kalpa)은 산스크리트어로 겁파(劫波)또는 갈랍파(?臘波)를 음역한 단어이다. 겁을 한자로는 글자 그대로 장시(長時)라고 한다.

겁(劫)이라는 시간개념의 은유적 표현이 있다. 천년에 한 방울씩 떨어지는 낙숫물이 집채 보다 큰 바위를 뚫어 없애는 시간이다. 또 천년에 한 번씩 내려오는 선녀가 비단 옷을 입고 사방 3자(尺)의 바위 위에서 춤을 추어 그 바위가 닳아 없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힌두교에서는 우주의 창조와 파괴가 반복되는 시간이자 우주 창조의 신 브라흐마의 하루이다. 인간계의 시간으로 환산하면 43억2천만년이다. 상상불가한 시간이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불교에서는 이 옷깃이라도 한 번 스쳐보려면 500겁의 시간이 필요하다. 부부의 연은 7000겁 부모 자식의 연은 8000겁의 인연을 쌓아야 된다고 한다. 악연(惡緣)이든 선연(善緣)이든 스치는 모든 인연은 전생의 수없는 인연이 쌓여 만들어진 것이다. 몇 생에 걸쳐 얽히고설키어진 인연의 씨실과 날실은 꽃비단을 만들기도 하지만 빠져나가기 어려운 그물을 만들어 옥죄기도 한다.

우리는 누군가의 선연(善緣)이기도 악연(惡緣)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은 모른다. 인연(因緣)이라는 말은 시작될 때 쓰는 말이 아닌 다 끝난 후에 쓰는 말이기 때문이다. 끝나도 모른다. 잔인한 윤회(輪廻)는 끊어 내지 못한 인연들이 재등장하는 다음 생이라는 후속편을 제작중이다.

`진정한 인연과 스쳐가는 인연은 구분해서 인연을 맺어야 한다. 진정한 인연 이라면 최선을 다해서 좋은 인연을 맺도록 노력하고 스쳐가는 인연 이라면 무심코 지나쳐 버려야 한다. / 우리는 인연을 맺음으로 써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피해도 많이 당하는데 대부분 피해는 진실 없는 사람에게 진실은 쏟은 대가로 받는 벌이다' 법정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며 인연을 함부로 맺지 말라고 강조하셨다.

이번 생 제 목숨 명해 받은 대로 살다가 이제는 맺기도 지겨운 연(緣)이나 끊고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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