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의 상생을 통한 공존
만물의 상생을 통한 공존
  •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 승인 2024.01.03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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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포럼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노동영 변호사·법학박사

 

인간은 만물(萬物)의 영장(靈長)이라는데, 인간 역시 만물의 일원이지만 생각하고 행동함에서 가장 뛰어나 만물 중 가장 신령스럽다는 말로 이해됩니다. 그러면서도 갑진년이 청룡의 해인 것과 같이 인간은 상상의 동물을 만들어내 인간이 할 수 없는 한계치를 상상의 동물에 투영하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이기적인 인간이기에 실존하는 동물이나 생명들을 인간보다 못한 하찮은 것으로 여겨 무시하고 짓밟아 버리기도 합니다. 그렇게 내몰린 생명들은 소멸하거나 멸종위기에 처하기도 합니다. 다른 동물에 비해 이성적 사고를 하고 문명을 꽃피웠다는 의미에서 호모 사피엔스라면 인간이 만물의 영장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역시 지극히 인간 중심 사고일 것입니다. 인간이 다른 생명의 실존을 위험에 빠뜨리게 한다는 측면이라면 만물의 최악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과 동물, 정중동(靜中動)의 식물, 눈이 보이지 않는 균 등 수많은 지구상의 생명체들이 있는데,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생명들 모두 존중하며 어울려 산다면 이를 상생(相生)이라 부릅니다. 또 서로 달라도 도움을 주며 어울려 산다면 이를 공생(共生)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각 생명들이 피해를 주지 않고 그 특성에 따라 사는 것을 상생, 생명들의 관계가 도움을 주고 받으며 사는 것을 공생이라 하여, 상생과 공생의 유사한 개념을 달리 구별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 성탄절 즈음에 날씨가 춥고 눈이 제법 내려 아이들과 눈놀이 하려고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안가던 상당산성을 찾았더니, 습지공원으로 만들었던 산성의 자연마당이 꽁꽁 얼어붙고 눈이 소복이 쌓여 있는터라 벌써 다른 아이들이 썰매도 타고 놀고 있었습니다. 같이 어울려 놀면서 아이들의 웃음이 언제 떠날지 몰랐습니다. 얼음 위에서 그리 깔깔대는데도, 개구리와 두꺼비 등 수생동물의 서식처인 것을 생각하니 얼음 아래서 괜찮은걸까, 인간의 놀이가 동면과 서식에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지나쳤습니다. 우리의 입장이 아닌, 다른 생명에게는 상생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에 아이들에게 추우니 그만하자고 서둘렀습니다.

지난 봄에는 도농의 형태가 되어가는 필자의 집 건물에 고맙게도 제비가 다시 날아들어 다섯 마리의 새끼를 치고 온통 지지배배 하는 소리에 잠을 깨곤 했습니다. 예의주시하고 있었는데, 어미새가 부실하게 집을 지은 것인지, 어느 인간이 제비집을 일부러 부순 것인지 모르지만 흙집이 떨어져 무너져 내렸습니다. 다행히 새끼들이 다치지 않았고, 나무바구니를 구해 높은 곳에 올려 놓았더니 금새 새끼들이 커서 여름을 나고 떠나갔습니다. 복 받으려고 일부러 도운 것은 아니지만, 올해 다시 제비가 찾아오리라 기다려집니다. 제비가 왜 해가 될지도 모를 사람의 집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아 키워낼까요. 맹수류 등의 천적으로부터 보호받고자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사람의 힘을 빌려 번식을 하는 본능적인 생존법칙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더워지는 날씨에 제비는 해충을 잡아먹으니 사람과 제비는 이렇게 공생을 합니다.

사람이 이성적 사고를 하면서 문명을 꽃피웠다는 것은 동시에 있는 그대로 상태인 자연이어야 할 환경이 어떤 생명들에게는 없어지고 이 생명들도 파괴되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자연환경에 인위적으로 개발행위를 하는 것은 이제 그만해도 우리는 지금 살만하지 않은가요. 사람과 동물, 자연 모두에게 지속 가능한 개발을 통해 만물이 상생 혹은 공생하면서 결국 모든 생명들이 지구상에 태어난 그대로의 본성이 존중되며 공존(共存)하는 것이 인류의 생명에 대한 사랑인 휴머니즘입니다. 보다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다른 생명들을 더 의도적으로 존중하는 것이 미래를 위한 우리의 진짜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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