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만으로도 행복한 꿈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꿈
  • 박창호 전 충북예고 교장
  • 승인 2024.01.03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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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박창호 전 충북예고 교장
박창호 전 충북예고 교장

 

지난 연말에 대학에서 주관하는 템플스테이가 있어서 신청했더니 운 좋게도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조용한 산속 절집에서 차분하게 연말을 보내며 한 해를 돌아볼 수 있었다. 지난 한 해 나는 어떻게 살았을까?

돌이켜보니 지난해는 막연한 불안감 속에서 새해를 맞이했던 것 같다. 평생을 교단에서 지내다가 정년을 눈앞에 두었던 새해 벽두(劈頭).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계획을 세우고 상상을 해 보았지만, 정말 그렇게 살아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마음 한구석에서 불안감이 수시로 떠오르곤 했었다. 그럴 때면 미지의 삶을 앞에 놓고 더 진지하게 접근하라는 신호로 그 불안감을 해석하면서 스스로를 다독이곤 했었다.

그러면서 그렇게 보내온 한 해…. 참 많은 것을 경험하고 실행해 보았던 한 해였다.

우선 스무 살 청년들과 함께 시작한 내 두 번째 대학 생활의 싱그러운 봄을 잊을 수가 없다. 청딱따구리 소리, 연분홍 꽃들의 향기, 꿀벌들의 분주한 움직임과 윙윙거리는 소리, 뻐꾸기 소리, 교정 벤치에서 삼삼오오 청춘들이 터트리는 경쾌하고 밝은 웃음소리. 그 소리와 향기에 취해서 나는 어느새 막연했던 불안감을 잊고 새내기 23학번 대학생으로 캠퍼스에 안착할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처음으로 `버스킹'이라는 것도 해 보았다. 생소한 오창 호수공원 무대에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것도 내가 작곡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한편으론 두렵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신기하기도 했다. 그렇게 삶에서 처음으로 버스킹이라는 것을 경험하였다.

오케스트라 활동도 꾸준히 했다. 은여울중학교에 근무할 때 첼로를 처음 접했지만 지속하지 못했다가 교직원 오케스트라에 초보단원으로 입단하여 매주 연습공연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였다. 정기연주회와 진천여중 순회공연을 잘 마친 것도 의미 있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좋았던 점은 온몸으로 음악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매주 가질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단원들과 함께 지휘자의 지휘에 맞춰 연습을 하는 시간은 그 자체로 행복이 가득한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지난해 가장 큰 변화라고 하면, 음악을 깊이 있게 공부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나는 작곡이 막연하게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선율을 오선지에 그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떠오르지 않아서 작곡을 할 수 없었던 것보다, 몰라서 작곡할 수 없었던 것이 훨씬 크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새롭게 음악 이론과 화성학을 배우면서, 소리와 그 원리 속에서 아름다움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조금씩 깨우칠 수 있었고, 내 음악적 상상력을 넓혀 갈 수 있게 되었다.

돌이켜보니 지난 한 해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엊그제, 연말연시라고 출가한 딸 내외가 과일을 들고 집에 들렀다. 집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새해 소망과 포부를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내도, 나도, 아들도, 딸 내외도 모두가 건강하기를 바라는 공통의 소망과 함께 각기 다른 자신들의 계획과 포부를 이야기했다. 나도 나의 계획을 이야기했고, 모두가 박수로 응원을 해 주었다.

새해가 시작되었다. 올해 나의 계획은 내가 쓴 곡을 오케스트라에 올리는 것이다. 오케스트라에서 내가 쓴 곡이 연주되는 것. 상상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가! 올해도 상상 그 이상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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