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잠은 어디로 갔나
그 많던 잠은 어디로 갔나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23.12.28 16: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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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연말이라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그럼에도 지난밤 뒤척이다 그 긴 밤을 하얗게 보냈다.

한 번 도망간 잠은 다시 들기가 쉽지 않다. 온갖 공을 들여도 잠은 달아나고 상념만 무수히 달려든다.

문제는 밤을 지새운 이튿날은 머릿속에 안개가 낀 듯 흐릿하고 몸은 녹작지근하고 정신은 무기력증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허송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병든 닭처럼 정신이 몽롱하여 낮 생활에 균형이 깨진다는 것이다.

지난밤은 치사해서 사정하기도 싫고 일거리를 찾았다.

낮에 하려고 생각했던 호박죽을 쑤었다. 짧은 해가 아쉬운 요즈음 호박죽을 쑤는 일로 몇 시간을 보내고 나면 낮 시간이 쓸 게 없다.

달아난 잠에게 통쾌하게 복수한 것 같다. 어떤 날은 밀린 원고를 교정보거나 문우님들로부터 받은 귀한 책들을 읽으며 밤을 새우는 날도 있다.

한 번 잠들면 세상이 꽹과리를 쳐도 모르고 자던 때가 그립고 그립다.

밥을 먹어야 생명을 이어 갈 수 있듯 잠을 푹 자야 올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밥 먹는 일과 잠을 자는 것 둘 중 어떤 것이 더 중할까. 잠이 쏟아져 그 재미있는 연속극도 못 볼 때가 잦았고 다음 장이 궁금해 죽을 지경인데도 눈꺼풀이 내려앉아 책에 코를 박고 잠들었었는데 지금은 눈이 뻑뻑해서 눈을 감아도 정신은 말똥말똥하다.

잠만 잘 수 있다면 별짓을 다 해도 달아난 잠을 다시 붙들지 못한다. 이브 자리를 갈아 보고 잠자리를 옮겨보기도 하지만 한 번 도망간 잠을 다시 찾아오게 하는 일은 쉽지 않다.

공을 들여 다시오면 고마운 일. 간신히 들어온 잠을 깨우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야속한 생각이 들어도 밥은 먹어야 하고 잠은 자야 한다. 아무리 생리현상이라고 생각해도 비굴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너무 많아 성가시던 것이 이 나이가 되니 다 도망가고 없어 찾아 나설 일이다.

마음에서 떠난 사람을 잡기가 어려울까 도망간 잠을 다시 청하기가 어려울까. 잠을 자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오히려 나를 옭아매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눈을 꼭 감고 자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더 멀리멀리 달아나는 잠. 그 많던 잠은 다 어디로 갔을까.

사람의 관계에서도 마음이 떠난 사람을 다시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 말 한마디에 작은 행동하나에 마음을 닫게 한다. 오래전 사람과 갈등을 겪었을 때 내가 쌓은 신뢰와 노력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 밤마다 엄청난 고뇌와 갈등, 번민이 밀려왔다.

불면의 날들이 늘어감에 따라 육체와 정신은 피폐해져 갔다. 밤새 뒤척이는 바다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나는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 때문인지 한번 닫힌 마음은 다시 열리기 쉽지 않다. 그래서 조심하고 조심하는 것이 사람의 관계다. 마음이 닫히면 다시 돌리려 애쓰지 않는다. 몇 날이고 몇 달이고 그냥 노여 있던 자리에 놓아둔다. 얼마간의 시간을 두고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마음이 들 때도 있고 영 아닐 때도 있다.

잠은 인간이 가장 편안한 자세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위로 보일 수 있다. 밥을 먹는 일도 수저를 움직여 씹는 운동을 하지만 잠은 그냥 누워 의식 없이 쉬는 것이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행위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위인 것 같은 잠이 우리 육체와 정신을 지탱하는 힘이 되는 것이다. 밤새 꿀잠을 자고 나면 개운한 그 마음은 세상 무슨 일이든 다 해 낼 것 같이 거뜬하다. 오늘 밤엔 달아났던 잠이 찾아와 주었으면 좋겠다. 짐짓 잠이 들었을 때 새해의 새로운 꿈이 찾아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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