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똥도 약으로
개똥도 약으로
  •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 승인 2023.12.28 16: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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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모든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다 소중하고 귀한 만물의 영장이다. 그

렇다고 해서 각자 각자가 자신만의 오랜 우물 속에서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 및 원하고 추구하는 것이 무조건 다 옳고 정당하다고 볼 수는 없다.

물론 무조건 다 그르다고 규정지을 수도 없다. 동일 상황을 놓고서도 사람마다 보고 듣고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 등은 얼마든지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

따라서 동일 상황에 대한 각자 각자의 감정 및 생각은 단순히 옳고 그름의 문제라기보다는, 같고 다름의 문제라고 보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력과 포용력을 키워가는 가운데, 원만한 소통을 이뤄냄이 아름다운 세상을 앞당기는 선결과제가 아닐까?

서로 성향이 다른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사람으로, 다른 한 사람은 개로 가정한 뒤, 다음과 같은 극단적 예를 든다면, 각자 각자가 느끼는 감정 및 생각은 단순히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같고 다름의 문제라는 것이 쉽게 이해될 것이다.

개는 1천만원짜리 수표보다도, 냄새나는 똥 한 덩어리나 뼈다귀 한 조각에 더 마음을 빼앗기면서 관심을 보이기 쉽다. 수표를 주면 이상하게 쳐다보고, 똥 덩어리를 던져주면 꼬리를 치며 좋아하는 것이 개의 일반적 습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사실을 간과한 채, 개에게 천박하게 똥만 좋아하지 말고, 쓸모없어 보이는 수표의 귀함도 이해하며 삶의 질을 더 높이라는 일방적 충고를 하면, 개는 그 말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보다는, 왠지 서운해하면서 일말의 소통마저 단절될 수도 있다.

큰 맥락에서 보면, 사람이 수표보다 똥 한 덩어리나 뼈다귀 한 조각에 더 끌리는 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나, 개가 똥 한 덩어리나 뼈다귀 한 조각보다 수표에 더 끌리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나, 도 낀 개 낀, 도토리 키 재기다.

각자 각자가 오랜 세월 안주해온 자신만의 우물 속에서의 반복해온 습관적이고 익숙한 삶에 사로잡힌 채, 업식의 노예가 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조금의 차이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와 사람 모두 다 자신만의 어둡고 칙칙한 오랜 우물을 벗어나야만 한다. 그래야만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의식으로, 매 순간순간이 태초인 가운데, 그때그때 처한 상황에 따른 가장 실존적이고 창조적이며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자신만의 오랜 우물 속을 벗어나는 일을, 불교는 나 없음의 무아를 깨닫는 것이라고 역설하고, 기독교는 매 순간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짐으로써 심령이 가난한 자로 거듭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선,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에 대한 막연한 욕심 욕망을 키우기보다는 개과천선 및 환골탈태가 전제돼야 한다. 생각의 변화가 행동의 변화를 초래하고, 행동의 변화가 삶의 변화를 초래하게 됨은 당연지사다.

그 무엇에도 물들지 않아서 팔이 안으로 굽는 일 없는 지공무사한 순수 의식을 회복해야만, 똥으로 된장찌개를 끓이려는 어리석은 욕심과 욕망을 벗어날 수 있다.

나 없음의 무아를 깨달아야만 무조건 똥이 더럽다며 피하는 편협된 삶을 벗어날 수 있다. 필요하면 개똥도 약으로 쓸 줄 아는 가운데, 치워야 할 똥은 자신의 손에 똥이 묻는다고 해도 말끔하게 치우는 멋진 삶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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