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어질 때까지 잊혀지지 않기를
이루어질 때까지 잊혀지지 않기를
  • 박창호 전 충북예고 교장
  • 승인 2023.12.27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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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박창호 전 충북예고 교장
박창호 전 충북예고 교장

 

“제가 준비한 곡은 10년 전에 저에게 보내는 메시지입니다.”

육 선배는 지난 1학기 무대공연실습 발표회 때 내 노래의 베이스를 맡아 연주해 주었던 늦깎이 대학생이었다. 매번 연습 때마다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어도 상냥한 얼굴로 싱글싱글 웃으며 연주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런 육 선배가 졸업공연 무대에서 담담히 그렇게 자신의 속내를 꺼내기 시작하였다.

“10년 전에 저는 실패한 젊은이였습니다. 가난했었고, 자존감이 낮아져 있었습니다.”

내 경험 때문이었을까? 그의 `가난'이라는 단어가 내 가슴을 도리는 것처럼 아프게 찌르며 다가왔다. 가난과 실패, 낮은 자존감…. 누가 시킨 것은 아니었지만 학비를 벌지 않으면 안되겠다 생각되어 새벽마다 신문을 돌렸고, 학교에 가면 매점에서 쉬는 시간마다 아르바이트를 했던 어린 시절의 내 경험이 떠올라, 그의 가난이라는 단어가 내게 더 아프고 진하게 다가왔다. 육 선배도 그랬었구나. 그 가난을 견디며 이겨내기 위한 인고의 세월을 보냈었구나.

“그렇지만 꿈을 가지고 있었죠, 주위 사람들에게 싱어송라이터가 되겠다고 말하곤 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멋진 무대에서 이렇게 연주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진심을 다해 박수를 보냈다. 지난날 그가 느꼈을 참담함과 어려움을 견디면서 10년 전 초라한 자신을 다독이고 있는 육 선배의 모습이 당당하게 느껴졌다.



햇볕이 안 드는 작은 방구석에서 지나간 일들을 후회하고 있어

스스로를 미워하며 자책하던 날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스스로를 책망하며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되었을 때에는 얼마나 힘들고 외로웠을까? 그렇지만 그 순간에도 다시 자신을 다독이며 좌절과 절망을 딛고 일어설 수 있게 만들었던 힘은 낡은 벽지 위에 붙어 있던 자신의`오래된 꿈' 때문이었겠지?



하루하루 견디던 나에게 정말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

꿈과 소망을 그리던 내게 결국 해낼 거라고

꿈을 그리던 나에게 지금 이 순간을 보여주고 싶어

함께 하는 친구들과 응원해주는 많은 사람들



`봐! 네가 원하던 너의 모습! 네가 원했던 것처럼 이렇게 노래하고 있잖아! 지금 이렇게 멋진 무대에서 이렇게 멋지게 노래하고 있잖아! 이게 10년 후의 네 모습이야! 얼마나 멋지니! 그러니 오늘은 조금 힘들어도, 오늘은 조금 초라해도, 너무 무너지지 말자! 괜찮아, 힘을 내자!'

육 선배는 10년 전의 자신을 향해 그렇게 당당하게 노래하고 있었다. 지난 10년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되뇌었을 그 마법의 주문으로 10년 후의 자신을 그렇게 또 다독이고 있었다. 그는 이미 우람한 거목이었다.

꿈은 자신이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켜주고 보살펴주는 자기 돌봄의 가장 크고 강력한 기제라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꿈은 이루어질 때까지 잊혀지지 않아야 한다. 꿈은 이루어진다. 꺼지지 않고 가슴 속에 간직되어 있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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