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김현숙 괴산교육도서관 관장
  • 승인 2023.12.25 1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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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 읽기

지난 주말, 폭신폭신 따뜻한 백설기 같은 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덮더니 오늘 아침 출근길 날씨는 영하 13도. 괴산으로 달려오며 바라본 창밖 풍경은 차가운 회색빛이다. 따뜻한 한줄기 햇빛이 너무나 그리운 아침이었다.

월 1회씩 책을 앞세워 사서 서넛이 모여 책 수다를 하고 있다. 올해의 마지막 책으로 선정된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읽으며 한 해를 마무리하고 개인적으로는 인생을 마무리하는 순간 홀로 서 있을 나를 상상해 본다.

책은 항암 치료를 마다하고 죽을 때까지 글을 쓰고 말을 하는 것이 암을 이기는 일이라 얘기하시는 이어령 선생님의 마지막 인터뷰이다. 저자는 길 잃은 양처럼 방황하고 탐험하되, 자신만의 무늬로 나답게 살고, 나답게 존재하고, 나만의 이야기를 쓰는 `단독자'가 되는 것이 스승 이어령이 남긴 메시지라고 전한다.

저자와 이어령 선생님의 문답 형식으로 이루어진 책은 읽기에 어렵지 않았지만, 품고 있는 내용은 묵직하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어떤 질문에도 막힘없이 비유와 은유를 사용하여 명쾌하게 설명하는 이어령 선생님은 신기하기만 했다. 상황에 맞는 적절한 비유와 상황 설정 그리고 단어의 선택이 너무나 절묘하여 감탄이 절로 나온다.

가령 어린 시절 해지는 줄 모르고 신나게 놀고 있을 때 저녁밥을 준비하신 엄마가 부르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만 놀고 들어와 밥 먹어!” 이것은 이쪽으로, 엄마의 세계로 건너오라는, 그만 놀고 생명으로 오라는 부름이라고. 그렇게 보면 죽음 또한 어머니 곁, 원래 있든 모태로의 귀환이라고 설명한다. 죽은 자에게 `돌아가셨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탄생의 그 자리로 가는 것을 의미하며, 죽음은 어둠의 골짜기가 아닌 눈부시게 환한 대낮이라고 설명하며 죽음은 끝이 아닌 생명의 시작으로의 귀환이라 말씀하신다.

또 하나는 산동네 위의 집을 올라간다고 할 때 동선이 죽 이어져 흐르니 그건 아날로그, 계단으로 올라가면 정확한 계단의 숫자가 나오니 그건 디지털이다. 만약 언덕과 계단이 동시에 있다면 그게 `디지로그'라고 설명한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결합 단어이며 언덕과 계단으로 이렇게 깔끔한 정리가 가능하다니 놀랍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이 그려준 그림처럼 말(言)이라는 무기를 들고, 말(馬) 달리는 자가 이어령이라고 저자는 회상한다. “내 말과 생각이 남아 있다면 더 오래 사는 셈”이라던 말처럼, 이어령 선생님의 마지막 인터뷰는 `삶과 죽음에 대한' 혹인 `죽음 곁의 삶'의 지혜를 나눠준다. 때로는 따뜻한 위로가 된다.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떠돌던 생각들을 깔끔하게 정리해준다.

삶의 순간순간 우문 하는 내가 이 책을 만난 것은 행운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시대의 영원한 스승이 어둠의 팔뚝을 넘어뜨리며 받은 진리품 같은 이야기, 가만히 앉아서 흙이 되는 대신 씨앗을 뿌리기로 한 스승의 이야기를 책을 통해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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