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하장의 추억
연하장의 추억
  • 김순남 수필가
  • 승인 2023.12.25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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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오래된 연하장이다. 물건을 정리하다가 예전에 받았던 연하장을 발견했다. 지금도 서로 연락을 하고 지내는 친구가 보낸 연하장도 있고 이미 오래전에 기별이 끊긴, 한때 가깝게 지내던 인연의 손 글씨 문구 하나하나가 너무도 정겹다. 수십 년 시간이 흘렀음에도 훈훈한 마음이 전해지며 이런 따뜻한 마음을 이즈음에는 많이 잃어가고 있어 아쉽기도 하다.

연말이면 문구점이 북새통이었다.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인 창밖 풍경과 벽난로에 장작이 활활 타고 있는 그림이나, 눈길에 산타가 선물 자루를 둘러메고 사슴이 끄는 썰매를 타고 있는 그림의 크리스마스카드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거리 이곳저곳 상점에서 흘러나오는 성탄 캐럴을 들으며 크리스천이 아니어도 젊은이들은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문구를 빌려 성탄 축하 메시지를 보내느라 한껏 들떴었다.

이에 못지않게 연하장도 다양했다. 보통의 서신과 다름은 복을 비는 그림이 인쇄 되어있고 60갑자에 따라 해마다 다르게 매겨지는 이름을 넣어 새해를 축하하고, 받는 사람의 건강과 만복을 기원하는 마음을 글로 써서 전했다.

오랫동안 연락을 못 하고 살던 친구에게서 연말에 연하장을 받으면 그동안 소원했던 마음도 봄눈 녹듯 사라지고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이런 마음에서인지 아니면 받는 사람이 내가 종교가 없는 것을 다 알고 있는데 `성탄을 축하해' 하면 조금은 진실성이 없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소심한 성격 탓인지 젊은 시절 성탄 카드보다 연하장에 큰 무게가 실렸었다.

연하장 한 장 받고 당황스러운 일도 있었다. 고향에서 같이 학교에 다닌 동기생으로 다른 의미가 없는 친구이다. 나는 그때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고 그 친구는 대학교에 가기 위해 삼 수를 하던 해 여름이었던 것 같다. 고향에 다녀오다 상경하는 차에서 만나 안부를 묻고 하다가 주소를 물어서 줬던 모양이다.

성탄 무렵 연하장 하나가 날아왔다. 반가운 마음도 있고 나도 답으로 연하장을 보내야 할까. 우물쭈물하는 와중에 누군가 찾아왔다. 입시 발표가 나고 입시에 실패한 그 친구가 자취를 감추었단다. 그 친구의 사촌 형쯤 되어 보이는 그들은 동생 수첩에 내 주소가 있어 찾아왔단다. 친구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달라고 사정하는데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연하장의 기원은 언제부터일까. 15세기 독일에서 신년을 축하하는 글과 아기 예수의 모습이 담긴 카드를 동판으로 인쇄하여 사용한 것이 연하장의 시초라 한다. 19세기 후반부터 영국과 미국 등에서 크리스마스 축하와 신년 인사를 함께 인쇄하여 쓰게 된 것이 지금 형태의 연하장으로 발전하였다. 우리나라도 오래전부터 섣달 그믐께나 새해 초에 세배를 대신해서 친지나 웃어른께 직접 찾아가 인사를 드리지 못할 때 아랫사람을 보내 서신을 전했다고 한다. 그런 풍속이 조선시대 세함(歲銜)이라 한다. 이런 풍속이 후에 연하장으로 발전 한듯하다.

이즈음에 연하장은 SNS를 통해 전달된다. 새해가 되면 연하장을 단체로 또는 따로 셀 수 없이 많이 받는다. 하나하나 보면 영상이나 그 속에 덕담들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감동은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그렇지만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그렇게라도 연하장의 명맥이 이어지고 있으니 위안 삼는다. 모처럼 연하장을 몇 장 샀다. 한 해 동안 고마웠던 지인, 아주 오래 나를 친아우처럼 살뜰히 챙기는 분, 그들의 따뜻한 마음을 떠올리며 연하장을 고르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글귀를 짧게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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