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꽃을 좋아하셨구나
아버지가 꽃을 좋아하셨구나
  • 김진숙 수필가
  • 승인 2023.12.20 16: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타임즈포럼
김진숙 수필가
김진숙 수필가

 

올케언니가 친정식구 카톡방에 아버지 사진 몇 장을 올렸다. 평생을 가슴에 담고 살줄 알았는데 잊고 산 날이 훨씬 많아진 아버지. 너무 오랜만에 뵙는 아버지 얼굴은 서글프게도 조금 낯설었다. 주변의 빈축을 살 정도로 딸 사랑이 유난했던 분인데 딸은 어느새 아버지를 잊어가고 있었나보다.

언젠가 받은 아이돌보미보수교육중 아빠 효과는 엄마 효과의 3배에 달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아빠의 사랑이 아이들의 자존감이나 인격형성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왜소하고 잘나지 못한 내가 이렇게나마 사회의 구성원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 것도 아버지에게서 받은 사랑의 역할이 컸을 것이다.

생각하면 가슴이 뻐근하도록 그리운 분, 찡그린 얼굴 한 번이 기억나지 않는 분, 자라는 내내 웅크린 등 두드려준 구수한 이북사투리, 그 덕에 내가 사는 세상이 조금은 더 밝았을 것이다.

아버지는 평생을 집 한 칸 지니지 못하고 사셨다. 그 설움이 얼마나 컸던지 걸지도 못하는 문패를 미리 만들어 놓고 한 번씩 꺼내보곤 하셨다. 그러다가 딸이 집을 장만해서 결혼을 하니 그게 그렇게 좋으셨던가 보다.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집 정리가 대충 끝나자 아버지는 더 이상 못 기다리겠다며 딸의 신혼집을 찾아 오셨다. 양손엔 너풀너풀한 조화가 한 가득이었다.

“생화를 사고 싶었는데 오래 두고 보라고 조화로 사왔다.”

현관의 신발장도 쓸어 보고, 베란다 창문도 열어 보고, 연탄광도 열어 보고, “좋다” “좋다”를 연발하시던 아버지.

딸의 집들이 선물로 꽃을 사면서 아버지 마음은 얼마나 흐뭇했을까? 요건 색이 고와서, 요건 모양이 예뻐서, 요것 저것 고르다보니 한 아름이 된 꽃다발을 사들고 그 발걸음은 얼마나 신이 나셨을까?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구석구석 꽃을 장식했다. 집안에 있어서 정말 좋겠다며 유난히 오래 살피셨던 화장실에도 장미 한 다발을 꽂았다. 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 꽃 장식 된 집안을 둘러보며 벙글벙글 좋아하시던 아버지는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거라.”

혼잣말처럼, 지나가는 말처럼 크지 않은 목소리로 나직이 당부 하셨다.

그 뒤 그 조화는 오랜 시간 우리 집을 장식했다. 꽃이 너무 많아 무당집 같다는 남편의 투정과, 지인들의 곱지 않은 눈총도 꿋꿋하게 버텨냈다.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라는 아버지의 당부대로 나는 딸 둘을 낳고 알콩달콩 행복한 세월을 살았다. 아버지의 염원이 하늘에 닿았던 모양이다.

이제는 사진으로만 뵐 수 있는 아버지, 추억 속에만 있는 아버지, 그리고 이제야 무릎을 치는 한 가지 생각, 우리 아버지가 꽃을 좋아하셨구나! 꽃 같은 것은 들먹일 새도 없이 팍팍하게 사셨지만 우리 아버지가 꽃을 좋아하셨구나! 당신 이름으로 된 집을 사서 한 번쯤은 꽃병에 꽃도 꽂으며 살고 싶으셨겠구나! 소년 같이 감수성 많던 아버지를 떠올리니 꽃 한 송이 드릴 수 없는 딸은 마음이 아프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