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화된 세상
기계화된 세상
  • 김은혜 수필가
  • 승인 2023.12.20 16: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김은혜 수필가
김은혜 수필가

 

이른 아침 거실 바닥에 비스듬히 누운 고운 햇살이 도망갈까 봐 애수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딩동딩동 벨이 부른다. 현관문을 연다. 집배원이 재산세 용지를 준다. 기별도 없이 찾아온 손님 같아 덜컥 걱정이 앞선다. 지난해 은행 전자기계 앞에서 끙끙대며 반복하는 모습을 보고 직원이 웃음 지으며 다가와 도와주던 모습이 물결 되어 넘실거린다. 설마 이번에는 뇌에 저장된 기억이 지워지지 않았겠지. 몇 해를 두고 남의 도움을 받는 자신이 한심해 쓴웃음을 피식 웃으며 재산세를 내기 위해 남편 통장을 들고 은행으로 갔다.

기계로 가 `지방세 조회 납부'를 누르고 통장을 넣었다. 본인 통장인 것을 확인하란다. `본인'을 눌렀다. 정정과 취소란 글자가 뜬다. `정정'을 누르고 비밀 숫자를 누르니 고지서 액수와 동일한 금액이 창에 뜬다. `확인'을 누르니 `납부되었습니다.' 할 수 있을까 염려로 구름이 하늘을 덮음같이 흐렸는데 알고 나니 이렇게 쉬운걸.

어려운 문제를 풀면 속이 시원해야 하는 데 왠지 기계화되어 가는 세상이 좋으면서도 삭막하다는 생각이 든다. 몇 해 전만 해도 은행원이 `어서 오세요.' 인사하고 용지를 받아 들면 `부동산이 많으신가 봐요. 재산세 낼 달이 오면 걱정이 되지요?'라는 정담이 오가지 않았던가.

금요일 저녁이었다. 문학회 재무가 회비 명세서를 카톡에 올렸다. 회비를 내지 않은 회원이 반수가 넘는다. 스마트폰이 연신 카톡 카톡 울린다. 한참 뒤 열어보니 `송금했습니다.' 문자다. 다음날 회비 명세서가 또 떴다. 수면 회원 빼고는 다 완납했다. 폰뱅킹으로 전송했음을 알 수 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나도 폰뱅킹을 배워야겠다. 배운다 해도 사용할 수 있을지. 창구에서 돈을 인출하는 것은 매달 사용해 잊지 않고 사용하지만, 폰뱅킹 역시 배운다 해도 재산세처럼 일 년에 한두 번 사용할 텐데 잊지 않으려나 나에게 묻는다.

스마트폰이 처음 나왔을 때는 밖에서도 전화를 걸고 받을 수 있는 기능만으로도 좋았는데, 요즘은 TV, 음악, 인터넷, 은행 역할까지 온갖 시스템을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다 사용할 수 있다. 스마트폰 하나만 들고 다니면 만사가 해결된다. 어디 그뿐인가. 아무리 멀리 있어도 마주 보고 이야기하듯 얼굴을 보며 이야기하는 세상이 되었다. 기계화되어 가는 세상이 좋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어렵사리 기능 한가지 배워 겨우 사용할 만하면 신형에 밀려 노화돼 있다. 어찌나 빠르게 변하는지 자고 나면 과거가 돼 있다. 몇 해 전만 해도 컴퓨터만 할 줄 알면 다 된 줄 알았는데 벌써 옛이야기가 된 지 오래다. 배우지 않으면 누구라도 세상과 단절된다. 빠르게 기계화되는 세상에서 살려면 오늘 배워 내일 잊는다 해도 배워야 한다.

자라면서 흠모하던 그림이 있는데 손에 들려있는 책이나 신문이다. 젊은이들의 그 모습이 지식인으로 보여 왜 그리 부럽던지. 그 시절이 오지 않아야겠지만, 와서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한가로이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여유로운 마음으로 천천히 읽던 낭만도, 손 글씨로 정성스레 마음을 써서 밥풀로 봉하고 우체통을 찾아가 붙이던 그 옛 시절이 그립다.

당연히 우리나라의 눈부신 발전을 감사해야겠지만, 기계가 사람을 지배하는 건지, 사람이 기계를 지배하는 건지 가정에서 사용하는 물건은 물론이요, 공공장소에서도, 길을 걸어가면서도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스마트폰에 시선이 꽂혔다. 스마트폰이 손에 들려있지 않은 사람은 어김없이 귀에 이어폰이 끼어 있다. 모두가 기계의 노예가 되어있는 것 같다. 시대에 뒤떨어진 말이라 하겠지만, 여름날 에어컨 바람 앞에서도 자연 바람이 그립듯이 넉넉함과 푸근한 정이 배어있는 구시대 정서가 나는 왠지 그립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