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 주의
추락 주의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3.12.19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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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커튼이 열리자 눈의 공연이 펼쳐집니다.

아늘아늘, 눈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선녀의 날개를 단 듯 맑고 부드러운 몸짓으로 춤을 춥니다.

그러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돌변합니다. 날카로운 몸짓으로 두 팔은 하늘을 찌를 듯 위로 치켜들고 다리는 뾰족해져 땅을 향해 내리 꽂습니다. 그러고 보니 눈들의 모습은 다 제각각입니다.

천천히, 조금 빠르게, 매우 빠르게 규칙도 없고 일체감도 없습니다. 앞으로 고꾸라지고 뒤로 자빠지고 또는 제자리를 맴돌고 휘돌아 치기도 하고 그러다 아래로 곧장 내리 꽂기도 합니다.

땅 위로 내려앉아 가늘게 숨을 고르는 눈도 있습니다.

서둘러 핸드폰을 찾습니다. 눈들이 진정되길 바라는 저만의 기도의식입니다. `안단테 안단테' 곡을 크게 틀었습니다.

Take it easy with me please(나와 편히 있어주세요)~~Like the feeling of a thousand butterflies.(수천 마리의 나비의 느낌처럼)/Please don`t talk, go on. play(말하지 말고 계속 연주해 주세요)~~

천천히 숨을 고르고 진정하라 속삭입니다. 하지만 눈들은 귀를 막은 듯 여전히 무아지경으로 춤에 빠집니다.

연못의 소나무도 덩달아 이리저리 몸을 흔듭니다. 발코니 난간에 부딪히기도 하고 돌담을 아슬아슬 피해 달아나기도 합니다.

눈들의 격정적인 공연을 보고 있자니 아슴아슴했던 지난날들이 가슴속을 파고듭니다. 삼십 중반을 막 넘어서면서부터 얼마나 달렸는지 모릅니다.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배웠습니다. 걸신들린 듯 배울 수 있는 것은 뭐든 머리로 가슴으로 발로 손으로 해치웠습니다.

배움만 좋아한 것은 아니었지요. 배우면서도 돈벌이를 얼마나 기를 쓰고 했는지 모릅니다. 나에게 오는 모든 일과 순간과 사람은 모두 내 것으로 만들자 악을 썼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귀도 막고, 눈도 감으며 살다보니 가슴엔 욕심만 그득해 더 이상 내 안으로 들어 올 것이 없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뾰족해 진 마음은 여기 가서 부딪히고, 저기 가서 고꾸라지고, 앞에서 엎어지고, 뒤로 나자빠지고 온통 상처투성이였습니다. 남들은 제 그런 모습을 보며 `대단하다, 부럽다, 멋있다.'라며 칭찬일색이었지만 마음은 공허하기만 했습니다.

그런 것일까요? 단단하고 육중한 거실 창으로 눈들이 추는 광란의 춤도 아름답게만 보입니다.

눈들이 여기 가서 꽂히고 저기 가서 부딪히고 뾰족한 소나무 잎에도 외면 받아도 멀리서 보는 이들에게는 그것마저도 아름답다 생각되겠지요.

하지만 이제는 어슴푸레 알 듯합니다. 어느새 제 나이도 귀가 순해 진다는 이순이 가까워 오니 깨닫는 바가 있나 봅니다.

사진을 보고 있습니다. `추락 주의', 뒤에 버젓이 이런 글귀가 있음에도 얼굴은 온화하고 편안한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몸을 뒤로 기대거나 밀면 안 된다는 경고임에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팔짱까지 낀 채 그렇게 웃고 있습니다.

얼마 전 충북문학인 대회 일정 중 방문한 곳의 전망대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아니 어쩌면 그동안의 삶이 `추락'이 무엇을 의미 하는지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일 꼭대기, 한발 내딛으면 낭떠러지로 곧장 떨어져 온 몸이 산산조각이 날 수 있는 곳이지요.

`추락 주의', 어쩌면 이것도 거실 창으로 바라보는 눈들의 춤처럼 먼 이야기라고 생각을 했던 저의 오만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아직도 귀가 순해지기는커녕, 귀도 눈도 마음도 어린 하수(下壽)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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