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과 이름값
이름과 이름값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23.12.13 1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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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태어나면 훈장처럼 받는 이름. 자신의 의지로 태어난 게 아니듯 자신이 의지와 무관하게 지어지고 불리는 이름. 그 이름을 음미하고 찬미합니다.

출생이 운명적이듯 이름 또한 운명적입니다. 목숨이 하나이고 존귀하듯 이름 역시 고유하고 신성합니다. 이름 지은 이의 소망과 이름 받은 이의 소명이 내재해있어 저마다의 이름은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인구는 많고 이름은 유한해 동명이인도 많고,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여 개명하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거개가 물려받은 이름으로 한 생을 살다갑니다

공명을 떨치는 이와 악명을 떨치는 이는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인구에 회자되지만 범인들은 족보에 이름 석 자 남기고 사라집니다.

이름문화라 불릴 정도로 한국인들은 한 사람이 여러 이름을 가집니다. 정식이름(호적명) 외에 어릴 때 부른 아명이 있고, 성인이 된 남자는 자(字)와 호(號)를, 결혼한 여자는 택호(宅號)를 갖는 것이 상례였으며, 친한 사람끼리는 자신들만 아는 애칭을 주고받기도 했으니 말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불교 신자는 법명을, 천주교 신자는 본명 혹은 세례명을 받고, 연예인은 예명을, 언론인과 문학인들은 필명을 쓰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름은 후천적으로 얻는 것이기에 선천적으로 타고난 기운을 북돋우고 중화시키는 이름이 가장 좋은 이름입니다. 부르기 쉽고 듣기 좋고, 시대에 맞고 흔하지 않으면 금상첨화입니다.

국화나 구절초처럼 이름을 알면 화초지만 이름을 모르면 잡초이듯 이름은 자신을 밝히는 표징입니다.

단순한 호칭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과 지향을 담고 있는 존재 그 자체입니다.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이 명징하게 답합니다. 이름이 주어짐으로써 비로소 의미를 얻게 되고, 의미를 얻게 됨으로써 존재가치를 지니게 된다고.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이름이 가지는 상징성을 아름답게 수놓은 절창입니다.

모든 이름에는 저마다의 이름값이 있습니다. 이름값의 사전적 정의는 이름에 알맞은 행동이나 노릇 또는 주위의 평판 때문에 치루는 대가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름지은이의 소망과 이름 받은 이의 소명을 이름값이라 이릅니다.

그런 소망과 소명을 가슴에 안고 부단히 산 이는 이름값을 한 이고, 게을리 한 이는 이름값을 하지 못한 이라고.

안타깝게도 이름값은커녕 이름에 먹칠하며 사는 이가 있습니다.

나라와 사회와 조직에 해악을 끼치는 정치인, 공직자, 기업인, 의사, 교육자, 종교인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학벌 좋고, 돈 많고, 권력 있는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이름값을 못하는 사회는 불행한 사회입니다. 아니 죽은 사회입니다. 정치인 아무개, 시인 아무개, 사장 아무개, 아무개 선생님, 아무개 아버지 등 이름 앞뒤에 붙는 직업과 직책이 이름값의 무게추입니다.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살았으면 본전인생이고, 자랑스럽게 살았으면 흑자인생이며, 부끄럽게 살았으면 적자인생입니다. 붙여진 이름에 걸맞게 생각하고, 말하고, 글 쓰고, 행동하는 것이 이름값의 시작이자 마침입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이 가슴을 때립니다. 아니 부끄럽게 합니다.

명실상부(名實相符)한 사람, 명불허전(名不虛傳)인 사람이고자 했으나 돌아보니 살기위해 몸부림친 이름 없는 범부에 지나지 않아서 입니다. 하늘은 녹(祿)이 없는 사람을 내지 않고, 땅은 이름 없는 풀을 내지 않는다 했습니다. 딴은 누군가에게 그리운 이름이었으면 합니다.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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