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 이이와 청주 그리고 서원향약
율곡 이이와 청주 그리고 서원향약
  • 김명철 청주에덴원 이사
  • 승인 2023.12.13 16: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특별기고
김명철 청주에덴원 이사
김명철 청주에덴원 이사

 

율곡로라는 이름의 도로가 대한민국에 4곳이 있다. 서울, 강릉, 파주에 각각 율곡로가 있는데 충북 청주에도 율곡로가 있다.

서울의 율곡로는 율곡이 관직에 있을 때 거주했던 지역이라 붙은 이름이고, 강릉의 율곡로는 율곡이 태어난 오죽헌 인근이라서 붙은 이름이다. 파주의 율곡로는 아버지의 친가가 있는 곳으로 율곡이 성장한 지역이라서 붙은 이름이다.

충청북도청과 옛 중앙초 사거리에서 상당로 사거리를 지나 서문동의 남주로에 이르는 비교적 좁은 도로의 이름이 `율곡로'다. 그런데 청주에는 무슨 일로 율곡로가 있는 것일까?

`율곡(栗谷) 이이'(1536~1584)는 조선 선조 때 청주목사로 재임였다. 그가 청주목사를 떠날 때 소나무를 심은 것을 기념하여 `율곡선생 수식송비(栗谷先生 手植松碑)'라는 표석을 세웠다. 그리고 오른편에는 청원군수 서연국이 세운 `율곡선생 식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이런 연유로 `율곡로'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리고 과거 청주읍성의 중심부이자 조선시대 충청도병마절도사영이 있었던 청주 중앙공원에 `서원향약비'가 있다. `덕업상권', `과실상규', `예속상교', `환난상휼'이라는 4대 덕목의 `향약(鄕約)은 조선시대 향촌사회의 자치규약 또는 그 규약에 근거한 조직체를 말한다. 중국 북송 때 섬서성의 도학자 여씨 4형제가 일가친척과 향리 사람들을 교화 선도하기 위하여 4대 강목을 내걸고 시행한 `남전향약'이 시초이다. 이후 주자가 보완한 `주자증손여씨향약'이 우리나라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역사학계의 정설이다.

우리나라 대표적 향약으로는 퇴계 이황의 `예안향악'과 율곡 이이의 `서원향약' `해주향약'이다. 율곡은 향약을 제정하고 일생을 향약과 관련하여 생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향리 교도에 진력한 대표적인 유학자다.

율곡은 1571년(선조 4) 6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약 10개월간 청주목사로 재임하면서 백성을 교화하고 미풍양속을 진작키 위해 서원향약을 만들었다. 서원향약의 특징은 양천을 막론하고 모든 주민을 참여시키는 계조직을 향약조직과 행정조직에 연계시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시 청주목은 25개면으로 도계장 4인 계장 25인 동몽훈회 1인 색장 1인에 각 리마다 별검을 두도록 했다. 그리고 선행 18조목과 악행 23조목을 구별하여 서술했는데 그 내용이 너무나 구체적이어서 놀랍다. 상대할 때 신의가 있는 것, 남을 선으로 인도하는 것, 남들의 싸움을 말리는 것, 남의 환난을 구제해 주는 것, 남의 원한을 풀어주는 것, 남의 잘잘못을 판단해 주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서원향약의 탁월성과 차별성은 맨 마지막 4번째 덕목인 '환난상휼`이다. 다른 덕목은 교육과 교화로 가능했다면 어려운 이웃을 돌보고 지원하는 `환난상휼'은 재정적인 지원이 없이는 불가능한 규약이다. 그런데 이런 일을 최초로 청주에서 시행했다는 점에서 오늘날 사회복지제도와 연계할 때 시사하는 바가 크고 자랑스러운 마음이다.

필자는 36년간의 교직 생활을 은퇴하고 사회복지사로 장애인 시설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함께 웃는 청주'를 표방하는 청주시의 시민으로서 우리 청주시가 서원향약의 역사적 전통과 정체성을 어어 받아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와 나눔과 섬김의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 함께 웃고 살아가는 고장'이 되길 소망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