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평골 어린 음악가들의 아름다운 추억
덕평골 어린 음악가들의 아름다운 추억
  • 이현호 충북예총 수석부회장
  • 승인 2023.12.13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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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이현호 충북예총 수석부회장
이현호 충북예총 수석부회장

 

며칠 전 방송국에서 방송촬영 섭외가 들어왔다. 충북도교육청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으로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이야기를 총 5편으로 제작하여 방송으로 반영한다는데 나는 5번째 편으로 정년퇴직을 하고, 제2의 인생의 삶을 사는 은퇴 교직자를 주제로 하여 촬영을 한다고 하였다.

퇴직한 나의 모습이 초라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용기를 내어 촬영을 허락하였다.

방송촬영을 하기 전 인터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학교와 학생들을 묻기에 서슴없이 괴산 덕평분교 이야기를 꺼냈다. 전교생 6명의 학생과 2명의 선생님이 함께 지냈던 1년간이 지금도 생생하고, 그 시절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즐겁고 그리운 작은 학교 이야기이다.

2010년에 문광초등학교 덕평분교로 발령을 받았다. 전교생이 6명인 초미니 학교였다. 덕평분교는 30년 전만 해도 시골치곤 꽤 큰 학교였다. 학교가 파한 후 아이들의 생활을 보니 시골이라 아이들이 방과 후에 특기 적성도 없고 집에 가봐야 부모님들도 밭일을 나가 아무도 돌봐줄 사람이 없어 아이들은 선생님이 퇴근할 때까지 학교 운동장에서 얼굴이 새카맣게 다 타도록 열심히들 놀고만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중고 바이올린 6대를 구해 아이들에게 1대씩 쥐어준 다음날부터 바이올린을 지도하였다. 악보도 잘 못 보는 친구들이지만 바이올린이 신기하기도 하고 악기를 각자 선물로 주었더니 열정은 대단했다.

몇 달이 지나자 진도는 달랐지만 1, 2곡은 연주할 정도가 되자 아이들과 상의를 하여 음악회를 열기로 하였다. 음악회 날을 10월31일로 잡고 열심히 연습을 하였다.

연주회 날 오후 2시가 되자 본교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기관장들과 동네분들. 그리고 동창분들이 오셨다.

연주회는 2학년 정환이부터 시작되었다. 오르간 반주는 내가 맡아서 했다. 시작은 좋았다. 그런데 두 번째 출연자가 연주를 시작하자마자 연주를 멈췄다. 그렇지만 그대로 멈출 덕평 친구들이 아니다. 내가 앞으로 나가 다시 지도하고, 기억을 되살려 연주를 무사히 마치게 되었다.

마지막 곡이 연주되기 전, 전교 회장인 소영이가`덕평골 이야기'란 글을 울먹이며 낭송을 하였다. 그 순간 연주회장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아이들을 시작으로 관람석에 있던 동창분들을 비롯하여 마을 주민들이 함께 울먹이고 있었다. 난감한 순간이었다.

얼른 아이들을 추슬러 마지막 곡 `에델바이스'를 연주하였다. 2절은 연주와 관람객들 모두 함께 부르며 연주회를 마쳤다. 연주회가 끝난 후 우레 같은 박수와 찬사를 받았다. 해는 서쪽 산을 막 넘으려 하고 있었다.

촬영하는 날 오후에 다시 덕평분교를 찾았으나 학교의 옛 모습은 사라지고 이름 모를 연수원이 리모델링 되고 있었다. 옛날 아이들과 공부하던 교실 쪽을 바라보며 아이들을 그렸지만 고요한 적막만 퍼지고 있었다. 아이들과 함께 묻었던 조회단 옆의 타임 캡슬이 묻혀 있는 자리는 어딘지도 모르게 어질러져 있었다. 그저 나의 상상 속에만 6명의 아이가 바이올린을 들고 함께 연주하던 `에델바이스' 노래만 아련히 들려온다. 얘들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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