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답게 존엄하게 죽을 권리
인간답게 존엄하게 죽을 권리
  • 박명식 기자
  • 승인 2023.12.12 17: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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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박명식 부국장(음성주재)
박명식 부국장(음성주재)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죽음은 인간의 힘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두려움 그 자체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래서 좀 더 가치 있게 살기를 원한다. 그리고 죽는 순간만큼은 고통스럽지 않기를 바란다.

지난해 6월 서울대병원 윤영호 교수가 존엄한 죽음을 보장하기 위한 법률 개정을 촉구하는 정책 제안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냈다.

윤 교수는 “인간의 존엄성은 삶의 자율성을 완성시켜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치료가 불가능하고 죽음에 임박해 참을 수 없는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자신의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자기 결정권을 존중해 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 달 후 국회에서 `조력존엄사법'이 발의됐다. 조력존엄사는 의사가 처방한 약제를 환자가 스스로 복용해 삶을 마감하는 방식으로 의사가 약제를 환자에게 주입하는 안락사와는 차이가 있다. 조력존엄사법 발의와 함께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1000명의 국민 중 무려 820명이 찬성했다. 그러나 국회는 이처럼 국민 관심이 높은 조력존엄사법을 1년 6개월이 다 되도록 방치한 채 손을 놓고 있다.

현재 △스위스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캐나다 △스페인 △포르투갈 △오스트리아 △뉴질랜드 △콜롬비아 등 11개국이 존엄사법을 시행하고 있다. 미국과 호주는 각 주의 판단에 맡기고 있다.

특히 스위스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있다면 시한부가 아니어도 존엄사를 인정하고 있다. 또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캐나다, 스페인, 포르투갈, 콜롬비아 등 7개국은 `안락사'까지도 인정하고 있다.

미국의 오레곤주에 살던 에머릭 부부는 존엄사법을 통해 함께 눈을 감았다. 심장질환으로 고통받던 88세 아내가 먼저 처방약을 복용한 후 임종했고 곧바로 87세 남편도 전립선암, 파킨슨병으로 인한 6년의 투병생활을 끝내고 세상과 작별했다. 부부는 임종 전 가족들과 이별의 시간을 가졌고 유족들은 부모가 임종을 준비하는 순간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삶과 죽음:러브스토리'를 세상에 공개해 감동을 전했다.

나 자신 또는 사랑하는 사람이 불치병으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면서 죽음을 참고 기다리게 하게 하는 것은 제2의 고통을 가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틀 뒤에 죽을 환자에게 하루 더 목숨을 연명하도록 해 주는 것이 과연 큰 의미가 있을까? 이 보다는 차라리 하루라도 고통에서 벗어나 스스로 편안하고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환자를 위한 도리일지도 모른다.

일각에서는 생명을 경시하는 풍토가 생길 수 있고 의료비나 간병 부담 등 경제적 이유로 환자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거나 가족들이 이를 적극 유도할 수 있는 부작용이 있을 수는 있다는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일리가 전혀 없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국민 82%가 조력존엄사법을 지지하고 있다. 이 같은 현실을 국회가 방치하고 있다는 것 또한 직무 유기다.

사실상 지금 이 시간에도 국내 종합병원 중환자실에는 코에 생명유지장치를 낀 채 병상에 누워 고통 속에 힘겨운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환자들이 많다. 음식을 더 이상 먹지 못해 배에 구멍을 뚫어 열량만 겨우 채우는 환자들도 많다. 이들은 겨우 목숨을 연명하고 있지만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다. 죽을 날만 기다릴 뿐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이쯤 되면 우리나라도 국민이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법제화에 대해 깊이 고민해 봐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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