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다고 느낄 때 하늘을 봐
외롭다고 느낄 때 하늘을 봐
  • 이영숙 시인
  • 승인 2023.12.10 18: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상 엿보기
이영숙 시인
이영숙 시인

 

세상에서 조건 없이 다 받아주는 것 중 바다만한 것이 또 있을까. 엉킨 채 굳어버린 물감 같은 머릿속을 말끔하게 비울 최적의 장소는 바다다. 밀려드는 모든 것을 수평으로 펼친다. 수시로 파도를 일으켜 흔적을 지우며 늘 원상태로 회귀한다. 대상이 누구든 다녀간 발자국을 남겨두지 않으니 얼마나 공정한가. 통섭의 대가 최재천 교수도 인생을 제대로 배우려면 바다로 가라고 조언한다. 바다는 그대로 정의이며 법전이다.

“바다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바다엔 발자국이 없다. 신의 재능을 잊고 살 때 나는 바다를 본다.”

우피 골드버그의 말처럼 바다는 그 자체로 신의 걸작이다. 바다는 모든 대상을 평등하게 대하며 군림하지 않고 그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아 자유롭다. 최근 흐르는 바다를 주제로 한 로랑스 드빌레르의 `모든 삶을 흐른다'를 읽고는 생각이 많다. 바다가 묻는다. 나만의 닻이 무엇이냐고. 그러고 보니 나만의 독창적인 닻이 분명하지 않다. 그렇다면 내 삶을 조종하는 선장으로는 살고 있는가. 학교에서 공통의 책을 읽고 우리 사회의 어젠다를 찾아 논술 문장을 지도하는 프리랜서로 일하다 보니 나만의 닻은 거두절미하고, 책이다.

주연이든 조연이든 내 삶의 갑판 위엔 늘 책 속 다른 사람이 선장이었고 그가 지시하는 항로를 따라 향해도 했다. 가끔 내가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지 헷갈리면서. 끊임없는 독서를 통해 유연한 사고로 흐르다가도 그런 루틴이 오래 지속되다 보니 일상의 평범한 가치들을 놓치며 살기도 했다. 때로는 가상공간을 유영하며 부캐로 더 많이 활동하고 편리라는 이유로 온라인상에서 물품 구매도 하지만, 나보다 내 속내를 더 잘 아는 알고리즘이 시도 때도 없이 선장 노릇을 하는 바람에 로그아웃할 때도 많다. 그래서 정신을 갱신하기 위해 가끔 재래시장을 찾는다. 값을 매기며 흥정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삶 속 바다를 본다.

삶이 권태롭다고 느낄 때, 혼자이거나 외롭다고 느낄 때 자신이 해오던 일에서 벗어나 다른 환경에 나를 놓는 일도 새로운 전환점이다. 권태나 우울함이 습관이거나 태도가 되지 않도록 내 감정의 밀물과 썰물이 건강하게 교차하도록 조율해야 한다. 삶 속 긴장과 이완 구조를 잘 부리는 일, 도심의 피로는 자연에서 풀고 정신활동의 피로는 육체 활동으로 풀며 이따금 새로운 환경에 자신을 놓는 일이 필요하다. 자신이 속한 생활 반경을 몇 시간 떠나보는 것도 충분히 기분 전환이다.

그것도 어려우면 옥상이나 자연에 나가 그대로 주저앉아 하늘 멍을 해도 좋다. 하늘 또한 만인 앞에 평등하게 흐르는 곳이다. 하늘이야말로 중력을 빼고 고개를 들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신의 걸작으로 신이 모두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 저마다 자신의 닻을 달고 항해하는 것들은 아름답다. 바다나 시장, 마음과 하늘도 밀물과 썰물을 타며 유연하게 출렁거릴 때 활어처럼 아름답다.

한때는 해변에 앉아 모래성을 쌓으며 순수하게 놀며 어린 사자였던 어른들, 땅따먹기하느라 별 볼이 없던 이 시대 고단한 어른들에게 오늘 밤은 창문 열고 하늘 보며 미소 지어 보라고 응원한다.

`혼자라고 느낄 때/ 고개 들어 하늘 좀 봐/ 캐스터네츠처럼 반짝이며/ 널 응원하는/ 별들 있잖니'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