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하면 효과가 있는 걸까
참회하면 효과가 있는 걸까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3.12.10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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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일전에 속죄하기 위해 절에 들어간다고 했더니 `죄가 씻기나?'라는 반문을 들은 적이 있다. 참회한다고 뭐가 달라질 수 있을까? 심각한 고민이 아닐 수 없다.

라이프니츠의 가능세계이론으로부터 시작해보자. 이에 따르면 우주 또는 우주 밖에는 이 세상으로 현실화될 수 있는 세계가 많다. 곧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유일한 세계가 아니다. 현실화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가능한 세계들(possible worlds)이 많은데, 그들 중 현실화된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다.

많은 가능 세계 중 왜 이 세계가 현실화되었을까?

그건 이 세상이 최대한의 가능성을 실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100만개의 가능성을 현실화시키고 있다면 나머지 가능한 세계들은 그보다 작은 가능성만을 현실화시킬 뿐이다. 그래서 신은 최대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 이 세계를 콕 집어서 현실화한다. 악(惡)은 최대 가능성이 실현되고 있다는 징표이다.

최대 가능성이 실현된 이 현실세상의 나는 최대 가능성을 실현시키는데 이바지할 자질을 갖고 있기 때문에 태어난다. 개체들이 이 세상에 태어난 건 최대한의 개체들과 공존 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할 수 있는 기준은 다른 개체들과의 공존 가능성이다. 곧 가장 많은 개체와 공존할 수 있는 나의 자질을 근거로 다른 개체들이 나의 탄생을 지지해준 것이다.

나의 존재근거는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타자들에게 있다. 나라는 톱니는 무한히 많은 다른 톱니들이 작동하는 세계에 비어 있는 요철(凹凸) 구조에 딱 들어맞게 제작되어 이 세상에 던져진다. 나라는 톱니는 미국이나 중국의 톱니구조에 들어가지 않고 대한민국의 특정 가정 및 주변 사람들과의 얽힘이라는 톱니에 들어맞게 되어 있다. 나는 지금의 이웃들과 잘 어울리는 요철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주변 환경 속에서 살게 된 것이다. 내가 여기에 자리해야만 신의 의도대로 세상에는 최대 가능성이 현실화된다. 이런 방식으로 라이프니츠는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는 이유, 그리고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 살아야만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라이프니츠의 생각을 뒤집어보자.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내가 태어나 겪은 사건들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고, 보다 단순하고 덜 고생하는 환경에서 살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지금과 같은 환경 가운데 태어나 복잡한 삶을 살아가는 건 내가 복잡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곧 나는 이 세상의 복합성을 소화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지 않다면 내가 단순한 존재로 바뀌면 된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변수(factor)가 2³=8개 정도라면 이를 단순화시켜 2²=4로 줄이면 8의 복잡성을 요구하는 이 세상에서는 태어나지 않게 된다. 만약 이를 더 단순화시켜 2¹=2로 줄이면 보다 단순하게 살 수 있는 세상에 태어날 수 있다. 2⁰=1이 되면 최고로 단순한 세상에 태어날 수 있다. 만약 아무런 가능성도 갖지 않는다(zero factor)면 어떠한 세상에도 태어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사람들하고 어울리면서 죄를 지은 것이다. 속죄를 하면 그 부류의 사람하고 내생에도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 죄를 지은 환경하고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 수 있게 된다. 단순한 인간이 되어 이와 같은 죄를 유발하는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죄도 짓지 않고 당연히 벌도 안 받는다. 참회의 효과가 여기에 있다.

참회는 복잡한 삶의 방식을 단순하게 바꿔서 복잡하게 얽힌 세상에 태어나지 않게 해준다. 어떻게 참회하느냐고? 복잡한 연결고리를 놓으면 된다. 곧 자신이 갖고 있는 많은 톱니를 깎아서 쓸모없어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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