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통영
  • 김은혜 수필가
  • 승인 2023.12.06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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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은혜 수필가
김은혜 수필가

 

이곳은 철거가 되려는 동피랑 마을 담장에, 벽에 알록달록한 그림을 그려 보존되었다. 그림을 그려 옛 마을을 보존케 한 그분께 고마운 마음이 든다. 벽화를 보려고 많은 이들이 모여들어 관광지가 되었다. 나도 첫 번째는 문학회 회원들과 왔었고 이번은 형제들이다.

마을로 향하는 길 한복판에 사방치기가 그려져 있다. 추억이 아련히 피어오른다. 이 사방치기는 나의 단짝 소꿉친구였다. 99단은 외워야 하는데 잘 외워지지 않아 나와 약속하기를 사방치기 칸을 통과하는 동안에 9단까지 외우다 틀리면 내가 나를 꿀밤을 주고 다시 돌아와 시작했다. 언제고 7단에 오면 틀렸다. 틀릴 적마다 이 멍청이야 꿀밤을 주고 다시 시작했지. 이곳에서 너를 만나다니 반색하며 놀려는데 칸을 바꿔야 하는 데서 주저앉고 만다. 반복했지만 매번 실패다.

처음 방문하던 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려 남의 집 처마에서 비를 피하며 낙숫물을 손으로 받기도 했고, 앞서가던 회장님이 구부러진 비탈길에서 뒤로 훌러덩 넘어졌었는데, 그 고불고불한 비탈길을 계단으로 만들어 안전하게 오를 수 있다. 작은 집 싸리문 앞에 서서 00아 놀자, 친구 이름 부르던 집 싸리문은 유리문을 만들어 놓고 차(카페) 손님을 기다린다. 선조들이 살아온 그대로 두었더라면 고향에 온 기분에 더 정감이 들었을 텐데 너무 아쉽다.

정상 동포루에서 통영 시가를 내려다본다. 누구는 이곳을 `동양의 나폴리'라 했다지. 또 다른 이는 `천지가 벽화'라 했단다. 내가 봐도 바다가 벽환지 벽화가 바다인지 분간이 안 된다.

한려수도를 보기 위해 정상에 올랐다. 잔잔한 호수와 같은 푸른 물결 위에 떠 있는 수많은 작고 큰 섬들 오랜 세월 자연이 만들어낸 예술작품이다. 가히 무엇으로 표현하리. 아름답기가 우리나라 8경 중 하나란 말도, 정지용 시인이 `통영의 자연미를 나는 문필로 묘사할 능력이 없다'라고 표현했다는 말도 맞는 것 같다. 내가 봐도 한 폭의 수채화로 보인다. 나는 숨을 크게 쉬고 양팔을 벌려 한 폭의 수채화를 품에 안아본다.

욕지도에 와 산허리 둘레길을 도는데 `새 에덴동산'이란 간판이 보이자, 여행을 계획한 자가 말하기를 삼 개월 시한부 환자 딸과 엄마가 바위를 깨고 흙을 일구고 우물을 파고 무허가로 집을 지어 20년을 살았다고 한다. 살기 위해 몸부림쳤을 모녀의 초라한 모습을 상상하니 가슴이 시리다. 나는 자연이 좋아 아름다운 곳을 찾아 이렇게 즐기는데 막상 세상과 단절하고 이들처럼 살라면 아름답다고 하려나.

양면 바다가 보이는 능선 야외 카페에 앉아 고구마 라테와 고구마 도넛을 앞에 놓고 나를 비우고 오가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자연을 바라보는데 문득 지구를 태양보다 작게 창조한 조물주의 심오한 깊은 뜻을 알 것 같다. 지구가 태양보다 컸더라면 넓디넓은 바다 위에 떠 있는 그 많은 섬, 남보다 더 아름답게 보이려고 곱게 치장한 동피랑, 병풍처럼 접혀있는 골짜기에 숨어 그늘진 곳에서 신음하던 모녀도 품지 못했을 것 같다.

그리고 나처럼 기웃거리다가, 망설이다가, 미루다가 기회를 놓치고 후회하던 이 늙은이가 늦복이 터져 세상 모든 만물이 나를 위해 예비하셨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모습도 발견하지 못했을 것 같다. 남은 날은 좀 더 나에 대한 가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겠다. 그리해야 세상 사는 맛이 더 맛있을뿐더러 내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지 않겠나 싶다. 아무튼, 내가 다른 사람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 세상을 사는 게 아니라 세상이 나를 위해 존재한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품고 살아야 나를 있게 한 그분도 즐거워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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