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해도 괜찮아
뻔뻔해도 괜찮아
  • 김진숙 수필가
  • 승인 2023.12.04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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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김진숙 수필가
김진숙 수필가

 

어느 30대 청년의 이야기이다. 청년이 초등학교 4학년 때 엄마한테 야단을 맞은 적이 있다고 한다. 엄마는 화가 많이 났었는지 청년의 옷을 모두 벗기고 집 밖으로 내쫓았다고 한다.

벌거벗은 채로 문밖에서 떨고 있는데 앞집 사는 꼬마가 나와서 빤히 쳐다보더란다. 따라 나온 꼬마의 엄마가 “그럴 땐 쳐다보는 거 아니야”하면서 꼬마를 데리고 가는데 그렇게 수치스러울 수가 없더란다. 그 후 꼬마와 꼬마의 엄마를 만나는 것이 두려워 집밖으로 나가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고 한다.

자신을 알몸으로 내쫓았던 엄마를 지금까지 용서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알몸으로 쫓겨났던 문밖의 세상을 향해서도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고 한다.

어린아이라고 수치를 모르리라 생각한 엄마의 체벌방식이 가장 큰 문제였지만, 그래도 그 수치 앞에 조금만 뻔뻔스러울 수 있었다면 청년의 인생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흔히 연예인 걱정은 하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계속되는 악플을 견디지 못하고 해서는 안 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연예인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쓰인다. 쇼윈도우의 마네킹처럼 대중 앞에 자신을 환히 드러내고 서있지만 그들도 감추고 싶은 것이 있을 것이다. 모른 척 지나가 주었으면 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작은 치부까지 다 까발려져서 조리돌림 당하는 그들을 볼 때면 온라인으로 연결된 세상이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온갖 추문에 휘말려 세상에 내동댕이쳐졌지만 그 아픈 과정을 이기고 다시 정상에 오른 몇몇 연예인을 나는 존경한다. 고개 들고 다시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용기와, 다시 정상에 오르기까지의 노력에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얼굴에 철판을 깔기가 어디 쉬운 일이었겠는가? 그 차가움과 이물감을 견디기가 쉽기만 했겠는가? 그것을 견뎌냈기에 그들은 다시 제2의 전성기를 맞을 수 있었으리라.

자동차부품 회사에 다닐 때의 이야기이다. 남한테 싫은 소리 못하고 남의 부탁에 거절도 못하는 성격 탓에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회사생활 하는 것이 조금 더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이 점심밥을 먹고 오던 동료가 지나는 말처럼 말했다.

“뻔뻔한 게 나쁜 것만은 아니야. 어떻게 좋은 말만 하고, 좋은 얼굴만 하고 살겠어. 조금은 뻔뻔해도 괜찮아.”

한여름 뜨거운 햇볕에 눈을 찡그리며 동료는 무심한 듯 말했지만 `애쓰며 사는 나를 알아보는 사람도 있었구나!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도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참 많은 위로가 되었었다. 그래서 그 동료와 헤어진 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뻔뻔함이 필요할 때, 뻔뻔하지 못해서 힘들 때, 나는 아직도 그 동료의 차분했던 목소리를 생각해내곤 한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지만 나한테만 유독 야박한 세상의 뻔뻔함 앞에 내가 초라해질 때도 어깨를 다독이는 것 같았던 그 목소리를 떠올린다.

뻔뻔하지 못한 사람들에겐 매일이 시험이다. 이 사람이 이렇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저 사람이 저렇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경우의 수를 따져보다가 자신의 용량을 초과할 때가 허다하다. 그 또한 한 점 부끄러움도 없이 살고 싶다는 과욕이 부르는 화근이리라. 옥에도 티가 있다는데 어찌 티 없이 살 수 있겠는가? 작은 티 정도는 눈 질끈 감으면서 뻔뻔하게 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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