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 아포리즘
쇼펜하우어 아포리즘
  • 이송현 진천교육도서관 사서
  • 승인 2023.12.04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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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권하는 행복한 책 읽기
이송현 진천교육도서관 사서
이송현 진천교육도서관 사서

 

진천으로 출퇴근하는 길은 밀리는 길과의 사투다.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가끔 졸음이 쏟아져 어떻게든 잠을 쫓을 궁리를 하게 되는데 도서관 직원들과 이 주제로 대화를 하다 보니 `이러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 잠이 깬다는 것이었다.

앞으로 함께할 `고독사(死)' 멤버를 모집하던 이에게 나온 `생(生)'에 대한 대답이 낯설어 되물어보니 `죽음'을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은 반대로 `삶'에 대한 강한 집착이 있다는 반증이 아니겠느냐는 것이었다. 철학자 같은 소리를 하는 MZ라니. 그래서 쇼펜하우어가 유행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 서점의 상위권에 엄청난 염세주의자로 알려졌지만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다는 철학자인, 읽어본 적 없지만 제목이 익숙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의 저자 `쇼펜하우어'라는 철학자와 관련된 책들이 랭크되어 있다.

패션에 대한 유행은 좇아갈 마음이 없어도 트렌디한 책은 놓칠 수 없어 골라서 주문했던 책이 `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김욱 편역·포레스트북스)이다.

책표지에 반짝이는 파란색으로 후가공 된 글씨는`쇼펜하우어 아포리즘'이었다. 아포리즘이 뭐지? 부터 시작한 책읽기. 아포리즘이란 깊은 체험적 진리를 간결하고 압축된 형식으로 나타낸 짧은 글,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라는 말과 같은 격언, 경구, 잠언 따위를 가리킨다고 한다.

쇼펜하우어의 책과 편지, 일기 등에서 꺼내온 문장들의 모음인 이 책은 목차만 보아도 주옥같은 말들이 가득하다. `다수는 그저 많은 숫자일 뿐, 많다고 정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나만 힘들고, 나만 피곤하고, 나만 희생당한다는 착각'이라든가 `우리가 사소한 일에 위로를 받는 이유는 사소한 일에 고통받기 때문이다.', `청년 시절은 처지와 환경이 어떻든 대체로 불만족스럽다.'와 같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문장부터 `사유를 통해 인간은 인간다워진다'라든가 `불행이 터졌을 때보다 불행이 지나간 후가 더 중요하다', `오직 질문을 통해서만 성장한다'는 마지막 제목과 `철학이란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와 그 이유를 실현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라는 철학에 대한 정의로 마무리하는 철학서다운 내용까지.

지난 일요일엔 중요한 약속 하나를 새하얗게 잊어버렸다. 이 정신머리를 어쩌냐며 77쪽에 실린 `자신이 증오스러울 땐 자는 것이 최고다'라는 문장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책에 실린 말대로 `모든 원인은 피로 때문이다.

삶에 지쳐버렸을 땐 냉정한 반성이 불가능하다. 지쳤을 땐 반성하는 것조차 피곤하다. 잘 먹고, 잘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자기혐오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해결책이다.'라는 이불 속으로 들어갈 좋은 핑곗거리를 꼭 붙잡고선.

2023년의 달력도 마지막 장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나를 들여다보지 못하고 굴러가는 일상 속에서 `그대의 오늘은 최악이었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쁠지도 모른다. 그것을 알면서도 그대의 청춘은 내일을 준비한다'며 불행하지도, 불편하지도 않게 우리에게 위로를 전하는 이 책을, 생각보다는 가볍지만 묵직하게 질문을 던지며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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