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입문
실버 입문
  • 장민정 시인
  • 승인 2023.11.28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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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장민정 시인
장민정 시인

 

“얘, 나 이상해, 큰 병에 걸린 것 같아.”

“증세가 어떤데?”

“가슴이 두 방망이질 해, 한겨울인데도 열불이 끓어올라 부채질을 해야 해, 밤에는 잠도 오지 않아 뒤척이다 밤을 꼬박 지새우기도 해, 나, 큰 병이면 어쩌지?”

어느 날 이웃 친구와 마주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나는 진지하게 걱정을 토로했다.

“얘는, 딱 보니 갱년기 증상이네, 뭐!”

친구는 경험자라면서 한 마디로 경쾌하게 답을 내놓았다.

갱년기,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인체가 성숙기에서 노년으로 접어드는 시기의 많은 변화는 누구나 통과의례처럼 겪게 되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불쑥불쑥 가슴이 뛰고 얼굴이 붉어지는 홍조며 밤새워 뒤척이던 마음 앓이 불면 등등.

아는 병이어서 망정이지 사전 지식이 없었다면 크게 두려워하고 괴로워하며 병원순례도 마다하지 않을 증세들이다.

이 증상들은 언젠가 아주 까마득한 어린 시절에 겪은 사춘기의 증세와 비슷한 점이 많다. 첫사랑, 첫 경험, 첫 실패 등등 처음 겪는 일은 모르면 몰라도 지각변동이 될 만큼 엄청난 충격을 대동하는 것이다.

뭐에 쫓기듯 청춘을 보낸다. 지금 생각해 보니 순전히 내 뜻만은 아닌 것 같다. 시류에 떠밀리며 고갯짓 몇 번 한 것뿐인데 나의 젊은 날은 스러져 가뭇없다.

삶이라는 것, 허덕이며 보낸 나의 지난날이 애석하다. 없는 살림살이에 나보다 나은 미래를 보장해주는 것이 어미의 사명이라 믿었으므로 젖 먹던 힘까지 몰방해서 자식들의 뒷바라지에 매진했다.

농부가 밭에서 여념 없이 일하다 허리를 펴는 순간이 온 듯 겨우 아이들의 학비 걱정을 끝낼 즈음의 안도감을 비집고 갱년기가 오는 것이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혼자 오는 법은 없다더니 내가 나를 돌아볼 찰나에 오는 갱년기, 흐르는 물이 소용돌이를 만나듯 이때쯤이면 자식들의 취업이며 혼사도 겹친다.

생각해 보니 나는 스스로 자신을 소외시켜 버렸다. 에둘러 말하면 희생, 나는 없어도 좋았다. 그저 아이들, 아이들, 자나 깨나 아이들의 뒷바라지에 몰두하느라 내 의식 속에는 아내도 며느리도 누구의 딸도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그러니 나는, 어디 한군데 끼일 구석조차 없었다. 그저 아이들의 어머니로서의 자리가 버겁도록 힘겨워서 세월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의식하지 못했었다.

어떻게든 삶의 고개는 넘어지는 것인가 보다. 눈코 뜰 사이 없이 살다가 커피 한잔 앞에 놓고 앉은 소중한 오후처럼 여가를 갖게 되는 즈음에 찾아오는 몸의 언어가 갱년기 증세 아닌가. 우리는 경청해야 한다. 연관 검색어를 훑으며 어제를 더듬고 사추기 (사랑을 추억하는 시기)를 영접하는 것이다. 내일을 위해 몸의 언어를 탐독해야 한다. 이때쯤이다 실버 입문이란 자작시 한편으로 마무리한다.



현관문 열고 서서/손잡이만 만지작거린다// 새색시 손을 잡고/산책하러 가듯 층계를 내려가는 아들/새처럼 조잘거리는 소리가/계단을 튀어 오르다가 또르르 굴러 내린다//새집 찾아가는 한 옥타브 높은 소리/허공의 휑한 골다공 밀도 속으로/냉랭한 바람이 구석구석 휘젓는다//몰래 조금씩 감추어 쌓아놓은/사소한 추억들이/차라리 시시해졌으면…//아이들이 구겨놓고 간 이불속에 발을 뻗은/남편의 잠긴 목소리가/뒷목에 감긴다// … … 어서 문 닫고 들어와!/춥다.//

(시-실버 입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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