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사과
나만의 사과
  • 전현주 수필가
  • 승인 2023.11.27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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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전현주 수필가
전현주 수필가

 

밭으로 가는 언덕길에 오르면 멀리 속리산 산등성이가 보인다.

옅은 안개가 낀 새벽의 온통 파르스름한 빛깔의 풍경 속에 하나도 같은 파랑은 없다.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자리에서 바라보는 산 중 가장 뒤에 서 있는 산이 그 순간 제일 높은 산이다.

정상의 의미는 때때로 무의미하다.

무수히 겹쳐 보이는 산들은 제각각 미세하게 다른 색으로 층을 이루며 풍경화를 그려낸다.

산의 색이 다르게 보이는 것은 산과 나 사이의 공기 때문이다.

한지를 손으로 대충 찢어 붙여 놓은 듯, 큰 붓으로 무심하게 그려 놓은 듯한 능선의 대범함에 가슴이 서늘해진다.

대자연의 완전한 미학에 느닷없이 주눅이 든다.

사람들은 흔히 대가들의 그림에는 향기가 있다고 말하곤 한다.

나는 그 말의 뜻을 잘 알지 못해 명작은 자연스럽다라고 이해한다.

아직은 흉내 내기에 급급해서 아무리 그대로 따라 그리려고 애를 써도 그들의 자연스러움을 따라 그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잘 그린 그림은 거스러미가 없다. 수천, 수만 번의 붓질 중 그 어느 획도 불필요하지 않다.

그 자연스러움이 치밀하게 의도한 것이라는 게 더 놀랍다. 어쩌면 우리가 경지라고 부르는 것이 그것인지도 모르겠다.

모작의 과정은 평정한 마음을 갖게 한다.

자신의 실력을 객관화하는 작업을 통해 스스로 한계를 깨닫는 과정이 된다. 한계를 깨닫는 작업이 반복될수록 모순적이게도 자신감이 차오르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전에는 손도 못 대던 그림을 어느 날 비교적 수월하게 그려내기도 하고, 통 엄두가 안 나던 작품이 만만하게 보일 때도 있다.

아기들이 어른들의 말을 무수히 듣고 따라 하면서 단어를 익히고 말을 배우듯이, 나도 언젠가는 나만의 해석과 방식으로 표현한 그림으로 세상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요즘 시간이 날 때마다 사과를 그린다. 그림방 이곳저곳에 사과가 쌓여간다.

서양화가로 전향한 어떤 가수는 그림을 전공한 화가들에게 사과는 그릴 줄 아냐고 공격을 받았던 모양이다.

솔직하고 엉뚱한 그녀가 자신만의 스타일로 사과를 그려내고 퍼포먼스를 해 냈을 때 그 논란은 슬며시 잦아들었다지만 뒤늦게 그 소식을 접한 나는 그녀를 응원하게 되었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를 표현할 때 학문적으로 많이 배운 이들도 해당이 되지만, 그 분야를 꾸준히 해내는 이들도 포함된다는 그녀의 당당한 말이 나만의 사과를 궁금하게 만들었다.

그 말 안에는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와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다는 뜻이 깔려있다.

내 안에 있는 사과는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태어날지 설레는 마음으로 물감을 짠다.

내 마음에 꼭 드는 그림이 액자에 담겨 벽에 걸리는 날 나의 내면은 지금보다 조금 더 채워져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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