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객식구
겨울 객식구
  • 정명숙 청주문인협회장
  • 승인 2023.11.26 18: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정명숙 청주문인협회장
정명숙 청주문인협회장

 

첫눈이 내리던 날, 붉은 맨드라미가 몸을 꺾었다. 마당을 둘러봐도 꽃은 보이지 않았다. 찬바람에 뒹구는 낙엽이 만든 을씨년스런 풍경만이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날씨가 좋아서 눈치만 보다 때를 놓쳤다. 내일은 기온이 더 떨어진다고 한다. 서둘러 텃밭에서 총각무와 골파를 뽑고 갓을 베었다. 양이 많아 김치 담그고 났더니 어둑한 초저녁이다. 밖에서 서성이다 빨래 널어놓은 게 눈에 띄었다. 햇살이 강하지 않아 눅진해진 빨래를 걷어야 할까 망설이며 건조대 앞에 섰다. 옷 위에 청개구리 두 마리가 앉아 있다. 노숙으로 생애를 보내는 생명체다.

잔뜩 웅크린 채 꼼짝도 하지 않는다. 죽었나, 손바닥에 올려놨다. 얼음처럼 차갑다. 잠시 후, 온기를 느꼈는지 펄쩍 뛰어 거실 밖 유리창에 네발을 붙이고 움직인다. 날이 추우니 밖에 둘 수 없어 한 마리를 다용도실에 들여놓은 커피나무에 올려놓았다.

이곳에는 화분을 들여놓을 때 따라온 갈색으로 몸을 바꾼 메뚜기 한 마리가 터를 잡고 있다. 여러 종류의 나무 화분이 있으니, 청개구리도 밖에서보다는 겨울나기에 좋을 것 같다. 남은 한 마리마저 데려오려고 나갔더니 보이지 않는다. 빨래를 일일이 들춰봐도 없다. 마당에 내려가 허리를 깊이 숙이고 찾아도 간 곳을 모르겠다. 어디로 갔을까. 신경이 쓰였다. 손가락 한 매디 만한 맨몸으로 어찌 겨울을 날까.

날씨가 추워지면 겨울 준비로 바쁘다. 두툼한 이불을 꺼내고, 따듯한 옷도 미리 준비해 놓는다. 양식을 저장해 놓고 난방도 신경 쓴다. 밑반찬을 만들고 김장 김치도 넉넉하게 담가야 한다. 먹는 일에 관심이 적어졌다고는 하나, 아직은 진행형이라 늦가을이면 몸이 고달프다. 이즈음이면 말도 안 되는 소리 한다고 핀잔을 들으면서도 가끔은 사람도 동면에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청개구리를 다용도실에 들여놓고 잘 있는지 날마다 살펴본다. 메뚜기는 나와서 햇볕을 쬐는데 어디로 숨었는지 한 번도 모습을 보여주질 않는다. 혹시 바닥에 떨어져 죽지 않았을까, 그냥 밖에 둘 걸 괜히 청개구리의 삶의 길을 바꿔 안으로 들였나, 후회하면서 화분 속 낙엽을 들췄다. 청개구리의 잠든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

청개구리는 낙엽 속에서 홀로 겨울을 난다고 한다. 한겨울이 되면 몸속의 수분 65%가 얼어 심장과 대동맥 언저리만 피가 돌아간단다. 물질대사가 거의 정지상태라서 몸에 저장한 양분의 소모가 적어 견딜 수 있다니 생존방식이 왜 이리 독한가.

한겨울 지하도에서 노숙하는 사람을 봤었다. 종이상자를 깔고 신문지를 덮고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사람들을 스쳐 지나갔다. 따듯한 국밥이라도 먹으면 덜 추울까, 싶어 슬쩍 지폐를 놓고 가면서 마음이 몹시 추워지던 기억이 있다. 연약해 보여 안쓰러운 청개구리의 겨울나기는 오히려 사람보다 강하다 못해 경이롭다.

내일은 밭에 가서 배추를 따야 한다. 배춧잎에 달팽이라도 붙어 온다면 우리 집 겨울 객식구는 사람보다 많은 세 마리가 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