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시계
모래시계
  • 신찬인 전 충북청소년문화진흥원장
  • 승인 2023.11.26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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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엿보기
신찬인 전 충북청소년문화진흥원장
신찬인 전 충북청소년문화진흥원장

 

정동진역 아래로 파도가 넘실댄다. 서울을 기점으로 동쪽 끝이다. 동갑내기 친구들과 열차를 타고 왔다. 청주역에서 제천역까지 90분, 제천역에서 동해역까지 3시간, 그리고 이곳까지 30분, 그렇게 열차는 조금의 여유도 없이 `덜커덩'거리며 이곳까지 달려왔다.

우리는 온종일 같은 시간과 공간을 지나왔다. 아니 같은 시대에 같은 직장에서 몇십 년을 함께 생활했던 동료들이다. 비슷한 시간을 살아왔지만 서로의 모습은 많이도 다르다. 어떤 친구는 몸이 아파 함께 오지 못했고 어떤 친구는 관절이 안 좋은지 걷는 모습이 불안하다. 65년이란 세월 동안 살아온 흔적은 그렇게 사뭇 달랐다.

오래된 건물과 새 건물이 혼재한 해안을 따라 걸었다. 낡은 것과 새것 사이에서 세월의 간극을 가늠해 본다. 바닷가 쪽으로 해수욕장이 보인다. 10여 분 걸으니 자그마한 시내가 있고, 그 중심에 물레방아 모양의 거대한 모래시계가 있다.

8톤의 모래를 다 비우는데 꼭 1년이 걸린다는 시계다. 시계를 형상화한 모래시계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시간 앞에 서니 왠지 마음이 다급해진다.

시간은 미래로부터 오는 건가, 현재로부터 가는 건가, 아니면 머물러 있는 건가? 인간들은 어쩌다 시간이라는 개념을 만들고 시계라는 기구를 만들어 시간에 쫓기며 사는 걸까?

수만 년 동안 같은 모습으로 넘실대는 파도에 시간은 어떤 의미였을까? 잘게 부서진 백사장의 모래가 세월의 흔적이라 해도, 애초에 시간의 개념은 없지 않았던가. 그러던 게 이곳 바닷가에 거대한 모래시계를 설치하고, 심지어 무심한 나무에마저 `모래시계 소나무'라는 이름까지 붙여 주고, 시간의 블랙홀로 빨아들였다.

시계가 정밀해 지면서 시간도 더 촘촘해졌다. 어디를 가나 온통 시간이 우리를 옥죄여 온다. 숙소는 오후 3시가 되어야 입실할 수 있다고 하고,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은 오후 4시까지만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함께 간 동료들은 저녁 6시에 식사를 하겠다고 한다. `째칵, 째칵' 시간이 쉴 새 없이 흐른다. 세상이 온통 시간에 통제되었고, 우리는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있다.

그렇다면 시간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르는 걸까? 그렇지 않다. 상황과 인식에 따라 시간의 길이는 다르다고 한다. 중량이 큰 물체의 근처에서는 시간이 좀 더 느리게 간다. 그래서 블랙홀 근처에서는 시간이 거의 멈추게 된다고 한다.

또 빠른 속도의 물체 속에서도 시간은 상대적으로 느리게 간다. 만일 로켓이 빛의 속도로 달리게 되면, 시간은 멈추게 된다고 한다. 그런 원리를 이용해 상상한 것이 타임머신이다.

그리고 자연적 시간과 인위적 시간에도 차이가 있다. 물리적 시간의 양은 같지만, 사람마다 경험과 생각에 따라 농축된 시간이 주는 느낌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일각이 여삼추'라고 무언가 초조하고 힘겨울 때는 시간이 느리게 가고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보내는 달콤한 시간은 훨씬 빨리 가기도 한다. 그렇듯 사람은 똑같은 세월을 살아왔어도, 똑같은 삶의 무게나 깊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남은 세월도 마찬가지다. 아껴 쓰면 20년, 대충 쓰면 10년, 아차 하면 순간이라고 하지 않던가. 내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이며, 또 어떤 시간이 되어야 할까? 주어진 시간을 좀 더 오랫동안 값지게 보낼 수는 없는 걸까?

문득 생각나는 단어들. 따스함, 너그러움, 쉼표, 오솔길, 윤슬, 노을, 미소 그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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