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言)과 글(語) 그 뜻(意味)에 얽힌 이야기
말(言)과 글(語) 그 뜻(意味)에 얽힌 이야기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3.11.26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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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아이들이 외부의 대상을 가리키면서 “저게 뭐야?”라고 묻는다. 우리는 “사과”라고 답을 한다. 아이는 `사과'라는 말의 뜻을 밖에 있는 과일로 생각한다. 우리는 말의 의미를 일차적으로 언어 밖의 대상, 곧 세상의 사물로 생각한다.

이럴 경우, `원'의 의미는 저 밖에 있는 동그라미가 된다. 철학자가 문제를 제기한다. 저 밖에 있는 동그라미는 엄밀하게 따져보면 원이 아니고 다만 우리가 생각하는 원의 불완전한 한 사례에 불과해. 원은 한 점에서 같은 거리에 있는 점들의 집합인데 그런 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곧 우리가 `원'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머릿속에 떠올리는 원은 세상 밖, 곧 이데아의 세계에 있는 거야. 말과 글의 의미가 세상 밖의 이데아에 있다고 하면 언어는 철학에 종속된다. 말과 글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철학적 이데아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소쉬르는 언어(기호체계)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무슨 말이지? 우리가 사용하는 말은 귀로 듣는 물리적 소리로부터 비롯되고 우리가 쓰는 글은 눈으로 보는 시각기호를 토대로 작동한다. 물리적 소리와 시각기호가 개념의 물리적 부분인 기표(記標, signifier)이고 개념의 물리적 부분이 표현하고 있는 의미가 개념의 정신적 부분인 기의(記意, signified)이며 그 둘을 합한 것이 기호체계로서의 언어(langue)이다. 소쉬르는 이렇게 언어의 의미를 창출해내는 구조를 언어 안에서 찾아냄으로써 언어를 언어 밖의 세상이나 이데아, 본질과 같은 철학적 실재로부터 독립시킨다. 곧 2500여 년 동안 언어를 지배해오던 철학을 언어학에서 쫓아낸다.

그러면 기호체계 안에서 언어의 의미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기는 걸까? `고향'이라는 단어에서 우리가 눈으로 보는 시각기호가 기표이며 어렸을 때 태어나서 자란 곳이라는 정신적 내용을 기의라고 한다. 여기서 언어의 의미라 할 수 있는 기의는 기표들의 차이에 의해서 결정된다. 곧 고향이라는 단어는 고양이, 고장, 고양, 고상과 같이 유사한 모양과 소리집단에 있는 기표들 사이의 차이와의 비교를 통해서 `태어나서 자란 곳'이라는 의미가 결정된다. 곧 언어의 의미는 기표들의 차이에 의해서 결정된다.

데리다가 묻는다. 언어의 의미가 기표들의 차이에 의해서 결정된다면 그 기표들의 차이는 어디에서 연유하는 걸까? 고양, 고장, 고상, 고양이라는 기표들의 차이는 말과 글로 표현되지 않는다. 우리가 보고 있는 건 고양, 고장, 고상, 고양이라는 기호일 뿐이지 그것들 사이의 차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곧 기호체계를 작동시키는 차이는 귀로 듣거나 눈에 보이는 기호체계 안에 있지 않다. 그래서 데리다는 말한다. 기호체계는 기호체계 밖과의 얽힘을 피할 수 없다. 기호체계의 의미를 결정하는 차이가 기호체계 밖과 얽히게 되면 언어의 의미를 하나로 결정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말의 의미를 일의적으로 결정할 수 없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데리다는 언어의 의미를 해체한다.

세종대왕이 묻는다. ㅏ, ㅓ, l, ㅡ, ㄱ, ㄴ, ㄷ 등이 의미를 가질까? 적어도 단어가 형성되기 전까지 말과 글은 의미를 갖지 않는다. 세종대왕은 문자를 창조할 때는 순수한 소리의 세계 순수한 시각기호의 체계를 다룬다. 곧 세종대왕은 말(言)과 글(語), 의미를 완전히 분리시키고 의미 이전의 물리적 소리와 문자의 모양만을 고려하여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이다. 세종대왕이 문자를 창제하면서 고려했던 말과 글의 세계가 데리다에 의해 해체될 수 있을까? 그건 의미 이전의 영역이기 때문에 의미의 비결정성을 말하는 데리다의 해체논리 적용범위를 벗어나 있다. 세종대왕이 구축한 말과 글의 세계는 이미 구조주의 언어학이나 데리다의 해체논리를 넘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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