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하루였다
평범한 하루였다
  • 김경순 수필가
  • 승인 2023.11.21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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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김경순 수필가
김경순 수필가

 

`1999년 4월 20일, 나는 평범한 아내이자 엄마로 하루를 시작했고, 즐겁게 식구들을 얼러 직장, 집안일, 학교 등의 일과로 이끌었다.'

콜럼바인고등학교 총격 사건 가해자 딜런 크린볼트의 엄마인 수는 그날 그렇게 평범한 하루를 시작했다. 하지만 몇 시간 뒤 그녀의 평범한 하루는 악몽의 날로 순식간에 변해 버렸다. 조용하던 학교에서 무차별적인 총기 난사로 12명의 학생과 1명의 교사가 사망했고 수많은 학생이 부상을 입은 엽기적인 총기난사가 발생 했는데 가해자 중 1명이 그녀의 아들인 딜런 클리볼드였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수의 가족도 딜런이 다니던 학교의 학생들도 평소와 다름없는 날들 중 하나였다. 다만 총기난사의 주범인 에릭과 딜런 만이 특별한 날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계획도 눈치를 채는 사람도 없었다. 왜냐하면 딜런은 수에게 더없이 사랑스러운 햇살 같은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건이후 딜런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닌 악마이며 괴물로 불렸다. 그동안 쏟아 부었던 아들에 대한 애정은 모두 물거품이 되어 버렸고, 대신 그녀는 사람들로부터 최악의 부모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진 채 살아야 했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얼마나 무서운 뜻을 내포하고 있는 말인가. 그 말은 자식의 잘못은 부모로부터 나온다는 경고였다. 지난해 우연히 방송에서 보고 구입한 책이었다.

수 클리볼드의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그동안 보편적이라 여겼던 나의 생각들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눈과 마음으로 확인하고 싶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가해자의 어머니가 무얼 그리 할 말이 많은지 보고자 하는 마음에 구입했다.

엄마들의 착각 중 `내 배에서 나온 자식이니 나만큼 내 자식을 아는 사람은 없다.'라는 생각이 최악일 것이다. 20년 가까이 초·중·고 학생들의 논술을 지도 했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다양한 학생들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겉보기와는 다르게 당찬 아이도 있고, 활발한 성격인 듯 보이지만 막상 이야기를 하다보면 수줍음이 많은 아이도 있었다. 무엇보다 제일 힘들었던 아이는 거짓말을 일삼는 아이다. 부모에게는 더없이 바르고, 착한 아이였지만 논술 수업시간을 엉망진창으로 만들던 아이였다. 참다못해 아이의 엄마와 상담을 하게 되었는데 교사인 나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결국 그 아이는 엄마의 일방적인 요구로 논술을 그만두게 되었다.

많은 엄마들이 자신의 양육 방식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 그러니 아이가 폭력적인 행동으로 문제를 일으키면 아이를 꾸중하고 잘못을 지적하기 보다는 양육을 잘못한 자신의 탓이라고 돌리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물론 자식의 행동에는 부모의 책임이 따르는 것은 맞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아이가 오롯한 인격체로 살아가기를 바란다면 옳고 그름은 분명히 알려주어야 마땅하다.

부모로서 자식을 사랑하고 믿어주는 것도 당연한 도리이다. 하지만 내 아이의 달라진 모습도 눈여겨보아야 하는 것 또한 부모의 역할이다. 딜런의 엄마 수는 자신의 아들이 어떤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지도 몰랐다. 딜런은 그럴 필요도 못 느낄 정도로 겉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던 아들이었다.

어쩌면 수의 이야기가 우리 모두의 이야기기도 하다. 요즘처럼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많을 때도 드물다.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아이도 어른도 열심히 바쁘게 살아간다. 그러니 자신의 마음을 돌 볼 여력이 어디 있겠는가.

수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날인지 새삼 깨닫는다. 이제는 복이 왕창 터진 날도 부러워하지 않겠다. 그저 소소한 하루, 평범한 하루면 족하다 여기며 살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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