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의 겨울나무이야기
박종호의 겨울나무이야기
  • 정인영 사진가
  • 승인 2023.11.16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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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인영 사진가
정인영 사진가

 

“수많은 나무 중 저의 눈에 많이 들어온, 황량한 기분이면서 예쁘고 무서우며 은유적인 머리카락으로 시간을 인내하는 이야기입니다.”

추운 겨울날에 아랑곳없이 한결같은 생명을 이어가는 나무들을 카메라에 담은 사진가 박종호. 언뜻 보기에 살아있음과 못함을 분간할 수 없어 보이는 나무들이 사정없이 몰아치는 동장군의 극성에도 불구하고 꿋꿋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얼어붙은 일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 사진들을 살펴보면서 사진가의 특이한 작업정신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앙상해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나무들에서 그만의 문학적 감성을 읽어낸다.

바쁘게 하루하루를 살다 자신도 모르게 순수한 마음이 메말라가는 현대인들을 보아왔다는 그는 참된 심성을 살려내려 하는 고통스러움을 겨울나무들에서 찾아내는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나무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 다르다. 나무는 늙음과 젊음이 교차한다. 나무의 늙은 나이테는 중심 쪽으로, 젊은 나이테는 껍질 쪽으로 들어서기에 나무가 나이를 먹으면서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죽는 것과 살아나는 것이 동시에 전개된다.

나무는 만물이 생동하는 봄에 잎을 내고 빛을 뿜는 여름을 지나 가을로 접어들면서 아름다움을 한껏 뽐낸다. 그리고 깊은 잠에 빠져든다. 하지만 잠자는 순간에도 새로움을 찾아내는 나무들은 날 선 햇살을 받으며 꿈을 키워내는 내일을 기다린다.

이를 보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그 고통은 언젠가 사라질 것임을 안다. 사정없이 몰아치는 눈보라의 매서움에도 꿋꿋하게 이겨내는 나무를 보며 희망을 키워낼 수 있지 않을까.

박종호의 나목 사진은 한 컷 한 컷마다 나름대로 의미 있는 자태를 보여준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무 한 그루 한그루 또는 수십 그루 들마다 세상 삶의 역정을 가늠할 수 있었다.

가지런히 빗어 내린 나뭇가지에서 무리지어 어깨동무하듯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는 나무줄기들이 꼭 삶의 질서를 이루어낸 듯하다. 그런가 하면 힘이 빠진 나무줄기 사이로 다가오는 햇빛과 물 위에 반짝이며 펼쳐진 빛물결들은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는 듯싶다.

그의 나목 사진을 보면 사진을 찍은 사진가의 시선도 엿볼 수 있다. 단순한 안목으로 겨울철 나무를 카메라에 담았다기보다는 수도 없이 보고 스쳐가는 나무들을 바라보고 살펴 가슴에 와 닿는 나무의 본질을 보여준다. 나무의 맑은 기운을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사진으로, 문학적으로 잘 엮어낸 은유적 표현인 것이다.

1962년 충청북도 제천의 농촌에서 태어난 사진가 박종호는 청주상업고등학교 학생 형님이 사준 카메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 찍기를 즐겼던 시절을 지나 사진 예술세계에 들어선 지 벌써 40여 년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온 그의 작업은 일상에 밀착되어 있다. 멀리 가지 않으면서 휴일 새벽과 낮, 오후의 해 질 녘을 앵글 속에 담아둔 사진가의 수많은 날은 행복을 노래해 온 시간이었다.

`찍는 방식, 철학, 특이점에 더하여 남들이 흔하게 찍는 뻔한 사진을 찍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육십을 갓 넘긴 박종호 사진작가의 신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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