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여, 빛이 되어라
노래여, 빛이 되어라
  • 신찬인 전 충북도의회 사무처장
  • 승인 2023.11.16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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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신찬인 전 충북도의회 사무처장
신찬인 전 충북도의회 사무처장

 

잠결에 `덜커덩'하는 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그리곤 `아! 꿈이었구나'하곤 벌떡 일어났다. `덜커덩 소리가 웬 소리냐, 경복궁 짓느라고 회방아 치는 소리냐' 꿈결에서도 `경복궁 타령'을 했었나 보다.

거실로 나가 악보를 들여다본다. “투 라 레이”를 외치며 `방랑자들'을 부를 때는 힘차고 당당하게, 러시아 민요인 `백학'을 부를 때는 구슬프게 표현하자고 노래 제목 옆에 써넣는다. 그러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몇 년 동안 참여하지 못했던 청주남성합창단에 다시 합류한 게 지난 여름이다. 합창단은 어려운 가운데도 명맥을 이어왔지만 코로나를 겪으면서 단원은 반으로 줄었고 재정 형편도 전만 못한 것 같았다. 시간 되는대로 연습에 참여했지만 출석률은 노래 솜씨만큼이나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덧 정기연주회를 맞이했다.

도무지 연주에 자신이 없다. 다른 단원들의 형편도 비슷하다. 악보도 낯설고 화음도 맞지 않는다. 결국 정기연주회를 한 달여 남겨 놓고 벼락치기 연습에 들어갔다. 일주일에 몇 번씩 연습과 공연을 병행했다. 주말이면 청남대에서 교회로 CBS합창단으로 찾아가는 음악회를 가졌다. 그러다 보니 정기연주회 날짜가 다가올수록 화음은 안정을 찾아갔다.

정기연주회를 하려면 이런저런 부담도 없지 않다. 공연 기획에서 후원자 물색, 관중동원에 이르기까지 책임을 맡은 임원진들의 고충은 다양하다. 무언가 돕고 싶지만, 마땅히 할 수 있는 게 없다. 공연 기획은 해본 적도 없고 오랫동안 실무를 겪어보지 않았으니 자신도 없다. 누군가에게 후원을 요청하는 것도 자존심이 상해 그만두기로 했다. 결국 내가 합창단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노래연습 열심히 하고 친한 사람들 공연장에 초청하는 것뿐이다.

몇 년 만에 서는 무대였다. 수많은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무대 조명이 휘황하게 비쳤다. 의외로 마음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1부 스테이지는 `내 평생에 가는 길', `주에 손에 나의 손을 포개고' 등의 성가곡으로 구성되었다.

노래하면서 `주 오셔서 세상을 심판한다'는 가사에 자꾸 마음이 걸린다. 몇 년 전 얼마간 신앙생활을 한 적이 있다. 그러다 코로나를 핑계로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다. 실은 정의롭지 못한 세상, 욕심 많은 자가 판치는 세상, 심판하지 않는 주님의 무관심에 믿음이 흔들렸었다. 그렇게 냉담자로 지내다 이번에 성가곡을 부르면서 믿음에 대한 생각을 다시 정리하게 되었다.

주님은 우리 삶에서 고통을 몰아내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 아니다. 인간은 살면서 온갖 어려운 상황과 맞닥뜨린다. 인간들은 시련과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영적인 존재로 거듭 태어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안락함을 통해 행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서 영적인 존재로 거듭 태어나도록 도와주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2부는 경복궁 타령 등 한국민요로 꾸몄고 3부는 닐니리맘보 등 가요로 선곡하여 흥을 돋우었다. 앙코르곡으로 `오 솔레미오'를 마치자 관중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 `아 잘 해냈구나'하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오랜만에 맛보는 희열이었다. 단원들은 벅찬 마음에 서로의 손을 잡고 `수고했어요, 잘 된 거지요'를 연발한다.

무대에서 내려오자 가족, 이웃, 친구들이 꽃다발을 한 아름 안긴다. 함께 노래할 수 있는 동료들이 있고 나의 즐거움을 함께 즐거워 해 주는 좋은 벗이 있으니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으랴. 가을밤, 그렇게 노래는 빛이 되어 내게 진정한 믿음과 고마운 벗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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