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가 달린다. 막바지로 치닫는 가을의 풍경이 지나간다. 글을 쓰는 사람들과의 아름다운 동행에 함께 했다. 버스를 타는 것도, 문학기행을 가는 일도 오랜만이다. 우리의 목적지가 황순원 문학관이라는 게 마음에 끌렸다. 작가의 작품 중 `소나기'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그곳이 마침 이 소설을 배경으로 조성된 소나기 마을이라니 설렌다. 왠지 모르게 술렁이는 마음이다. 한눈팔지 않고 마음 길을 따라가 볼 참이다.
경기도 양평의 문학관에 도착했다. 처음 눈에 들어 온 건 쭈그려 앉은 소년과 소녀의 동상이다. 보기만 해도 애틋하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징검다리와 개울의 섶다리도 재현해 놓았다. 두 주인공이 소나기를 피했던 수숫단도 보인다. 소환된 둘이서 바짝 붙어 앉아 비를 피하고 있다. 소나기는 둘의 관계가 가까워지고 깊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소녀를 아프게 한 원인이기도 하다.
갑자기 세차게 쏟아지다가 곧 그치는 비라는 사전적 의미처럼 짧은 사랑을 내포한다. 순수한 사랑과 비극적인 결말을 담은 이 소설은 어린 나이에 시련을 겪는 소년을 통해 성장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중학교 때 교과서에서 접했을 때 나는 주인공인 소녀가 되었다. 이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나는 소녀가 된다. 이름을 쓰지 않고 3인칭인 소년과 소녀로 묘사한 게 인상적이다. 글을 읽는 이들 모두가 스스로 주인공인 양 느끼게 된다. 아마도 작가의 의도가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둘이서 비를 피하던 수숫단이 나를 멈춰 세운다. 다시는 소녀를 보지 못하는 장소가 된 곳. 이별의 장소가 된 거기서 수줍음 많던 한 소녀를 만난다. 소설 속의 주인공이 아닌 낯익은 얼굴이다. 열 살의 소녀는 늘 혼자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큰 오빠는 대학에 가면서 타지로 떠났다. 오빠 둘은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녀 늦게야 집에 왔다.
혹독한 가난으로 농토가 별로 없는 우리 집은 엄마를 밖으로 내몰았다. 남의 일을 다녀 어둑해져서야 볼 수 있는 엄마에게 투정도 할 수가 없었다. 온종일 술타령으로 하루를 보내는 아버지를 향한 미움과 원망은 상처가 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오래인데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아 욱신거린다. 내가 술을 무척 싫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어도 그들은 엄마와 함께 있다. 다른 애는 동생들 보느라 정신이 없다. 괜한 눈치만 보다가 슬며시 오기가 일쑤다. 막내인 나만이 홀로 집을 지켰다. 방까지 쳐들어오는 겨울의 추위는 외로움까지도 더 파고들었다. 가족을 기다리는 시간은 길고 긴 고문이었다. 가혹한 형벌이었다.
껍데기 속으로 자꾸 숨는 달팽이처럼 움츠러든 작은 그 애를 애써 외면해 왔다. 아는 척하는 순간, 무시무시한 빙하로 녹아내릴 것만 같아 질끈 눈을 감았다. 어른인 지금까지 그 애 때문에 아프다. 그녀와 마주친 지금, 용기를 내야 한다. 예서 머뭇거리면 평생 후회하게 될 테니 말이다.
`어린 재정아. 너무 외로웠지? 괜찮아, 이제 더는 혼자가 아니야. 너무 늦어 미안해' 내가 외로운 나를 안는다. 켜켜이 외로움이 환해진다. 사르르, 햇살 같은 홀로움이 퍼지고 있다. 황순원 작가의 아들인 황동규 시인이 찾아낸 예쁜 말이다. 소녀가 내게 묻는다. 왜 오늘은 그냥 지나치지 않았느냐고. 내가 내게 대답한다. 소나기를 피할 수 없었노라고. 너를 귀찮도록 찾아갈 생각이라고. 이제 내 안에 소나기 속의 소녀로 남는다. 6학년 올라가면서 전학을 간 소년이 문득 보고 싶어지는 이유가 된다. 내 발 앞에 낙엽이 서풋 앉는다. 바람에 묻어온 안부라도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