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없는 시대정신
트라우마 없는 시대정신
  •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3.11.12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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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꼰대', `라떼에는'이라는 용어에는 구세대에 대한 신세대의 피곤한 느낌이 묻어 있다. 어느 시기에나 세대 차는 있다. 세대 차가 있다는 건 어떤 식으로든 사회가 변화 발전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젊은 세대들이 이전의 세대들에게 꼰대라고 부르는 건 뒤집어서 얘기하면 구세대가 시대정신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나이 든 사람들은 격변과 환란의 시대를 살아왔다. 36년 일제 강점, 6·25전쟁, 4·19 혁명, 5·16 쿠데타, 10·26 국가원수 시해, 12·12 쿠데타, 5·18 민주화운동, 6·10 항쟁, IMF 등 굵직한 사건들을 겪으면서 경제발전의 초석을 마련해왔다. 사회역사적인 사건들, 특히 파국적인 사건들은 한 민족의 무의식에 집단적 트라우마를 심어놓는다.

일제 강점기를 살았던 대부분 사람은 나라를 잃은 설움을 뼈저리게 느끼며 일본에 대해 증오감을 안고 살았었을 것으로 믿는다. 일본이 패망할 줄 몰랐던 사람 중 일부는 조센진이 아니라 반도의 일본인이라는 처지에 만족하며 살았을 것이다. 우리 이전의 세대들과 우리는 일제강점기의 트라우마를 갖고 일본에 대해 특별한 반감이나 호감을 갖고 살아왔다. 일제강점이라는 트라우마는 우리 민족에게 반일 감정을 심어놓았고, 극일해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게 하였다. 물론 강대국인 일본에 저항할 수 없으니 일본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친일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생겼다. 친일과 반일의 반목은 일제강점이라는 민족적 트라우마가 아직도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6·25 전쟁은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우리 민족의 자존심에 내적인 손상을 입힌 사건이다. 일제 강점기가 외세의 강제 침탈에 의한 사건이었다면 6·25 전쟁은 민족 내부에서 일어난 동족상잔의 비극적 사태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우리의 무의식에 깊은 트라우마를 새겨 넣은 사건이다. 이런 트라우마 때문에 과거 우리는 반공을 국시로 삼은 적도 있었다. 친북과 반공의 이념적 대립이 국가의 주요 이슈가 되는 건 6·25라는 민족적 트라우마가 아직도 남아 있다는 걸 보여준다.

우리는 우리의 아들 딸들을 우리가 겪은 환란으로부터 자유로운 무풍지대에서 키워왔고 이들이 이 시대의 주인공이 되어 있다. 우리의 아들 딸들은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친일과 반일, 반공과 친북의 이념적 대립을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은 마음 가운데 일제강점에 대한 의식도 없고 6·25에 대한 트라우마도 없다. 그들은 현재 우리 사회를 양분하고 있는 보수와 진보의 대립에도 별 관심이 없다. 그들은 트라우마가 없어서 마음이 꼬여 있지 않고 그래서 거침이 없다.

이들은 특정국가에 대한 편견적 정서 없이 세계무대에서 우뚝 서고 있다. 한국 문화(K-culture), 콘텐츠, 경제, 의료, 미용, 기술, 국방 등에서 우리는 세계 최정상을 향해 가고 있다. 세계 최정상을 향해 갈 때 이들의 뇌리에 반일, 친일, 반공, 친북, 보수, 진보와 같은 낡은 프레임은 사라지고 없다. 민족이 겪은 비극적 사건 때문에 집단 무의식에 자리 잡은 트라우마는 더 이상 그들의 족쇄가 되지 않는다.

그들이 우리 세대를 꼰대라고 부르는 이면에는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자신들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요구가 들어 있다. 특히 자신들의 역량을 무한히 축소할 수 있는 민족적 트라우마를 덮어씌우지 말라는 호소가 들어 있다.

어느 시대나 그 시대를 지배하는 시대정신이 있다. 갈참들의 시대는 끝나가고 트라우마 없는 새로운 세대가 이 시대의 주인공이다. 시대의 주인공들은 우리에게 말한다. 현재는 트라우마로부터 자유로운 시대정신을 요구한다고. 낡은 이념으로 우리의 발목을 잡지 말라고. 그걸 벗어던져야 세계최고가 될 수 있다고. 그런데 우리의 위정자들은 낡은 프레임에 갇혀 나라의 발목을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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