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시계
고장난 시계
  • 윤학준 충북교육문화원 교육연구사
  • 승인 2023.11.08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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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산책
윤학준 충북교육문화원 교육연구사
윤학준 충북교육문화원 교육연구사

 

어린 시절, 음악 듣는 것을 좋아했던 나에게 유일하게 음악을 들려주는 기계는 14인치 칼라TV였다. 당시 학교에서 탁구부 활동을 하면서 아침 일찍 등교해 훈련으로 하루를 시작했고, 방과 후에도 강당에서 매일 탁구를 치며 지냈다. 친구들은 학교운동부로 활동하고 있는 내가 음악을 좋아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집에 와서 매일 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유일하게 음악을 들려주었던 TV를 켜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오로지 공중파만 나오던 시절이라 일정한 시간이 되어야만 TV가 나온다. 그 시간이 바로 16시30분, 30분 동안 화면조정 시간을 거쳐 17시부터 애국가가 나오고 정규방송이 시작된다. 각 방송사마다 다르지만 KBS1에서는 내가 좋아했던 클래식 음악이 나왔다.

지금 기억해 보면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미뉴엣, 드보르작의 유모레스크 등이 나왔던 것 같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바로 그 첫 곡, “빠~ 밤 밤 밤 밤 밤 빠~바 빠밤 밤 밤 밤 빠바바바밤” 아주 단순한 멜로디에 경쾌한 리듬의 테마가 연주되고 그 테마가 반복할 때 1st 바이올린이 대선율로 “빠~~~~빠밤 빠 밤~~~~” 이렇게 연주되는 아주 쉬우면서도 재밌는 곡이었다. 특히 이 대선율이 나오는 부분은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을 받아 계속 흥얼거렸다. 첫 곡이 끝나고 또 좋은 다른 곡들이 순서대로 연주된다.(매일 연주 순서는 같았다.) 마지막 곡이 모차르트의 미뉴엣이었던 것 같은데 항상 곡 중간에 끝나고 애국가가 나와 매일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어떤 날은 조금 더 들려주고 끝나는 날이 있는데 그 날은 소소한 행복이 가득한 날이었다. 초등학생이었지만 연주되는 대부분이 곡 제목을 알고 있었던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참 신기하다. 물론 학교에서 배우기도 하고 피아노학원을 하고 있는 친구 엄마에게 물어보기도 했지만 유일하게 제목을 모르고 지금까지 지내왔던 곡이 바로 그 `첫 곡'이었다. 지금도 멜로디를 기억하고 대선율이 나올 때면 기분이 항상 좋아지는 그 곡, 그렇게 제목을 모른 채 지금까지 살아왔다.

요즘 교육문화원에서는 학교예술교육축제인 K-문화마당이 진행 중이다. 합창, 오케스트라, 뮤지컬, 연극, 댄스, 밴드 등 각 학교 예술동아리들이 갈고 닦은 실력을 한 자리에 모여서 공연하는 축제의 장이다. 참여하는 장르와 학교, 학생이 많아 준비해야 할 게 많은 행사이기에 첫날부터 긴장감을 놓을 수 없이 진행에 집중해야 한다. 무사히 첫째날 개막식과 합창 공연이 끝나고 둘째날 오케스트라가 시작되었다. 오후에 본 공연을 위해 오전에 리허설을 하는데 어느 초등학교 오케스트라가 익숙한 곡을 연주하는 것이다. “빠~ 밤 밤 밤 밤 밤 빠~바 빠밤 밤 밤 밤 빠바바바밤” 바로 이제껏 제목을 모르고 추억 속의 멜로디만으로 존재했던 바로 그 곡, 분주하게 공연장을 돌아다니며 리허설 진행에 정신이 없었던 내가 그 익숙한 멜로디에 잠시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그 곡, 테마가 연주되고 반복될 때 1st바이올린의 대선율이 기분 좋게 들리는 그 곡, 바로 미국의 작곡가 앤더슨의 `고장난 시계'였던 것이다. 이제야 추억 속 간직했던 곡의 제목을 알게 됐다. 지금 유튜브에 `고장난 시계'를 검색해서 들어보자. 들으면서 내가 구음으로 적었던 “빠~ 밤 밤 밤 밤 밤 빠~바~~”를 다시 한 번 읽어보자. 앤더슨의 `고장난 시계'가 들어있지 않은가? 어릴 적 꽁꽁 싸매어 보관하던 보물이 이제야 황금이라는 이름으로 찬란하게 빛나던 소중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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