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우려면 비워라
채우려면 비워라
  • 백범준 작명철학원 해우소 원장
  • 승인 2023.11.08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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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문앞에서
백범준 작명철학원 해우소 원장
백범준 작명철학원 해우소 원장

 

겨울의 문턱이다. 그래서 그런지 요 며칠 바람이 세차다. 입동(立冬)인사 치고는 좀 과하다 싶기도 하지만 그 덕에 게을러 내내 미루던 일을 했으니 세상에 과해서 좋은 점도 때로는 있다. 그간 미뤘다던 일은 옷장정리다. 그래봐야 얇은 옷 들이고 겨울옷 내는 일이다. 춥기는 춥고 또 얼어 죽기는 싫었나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사람은 닥치면 다 하게 되어있다”라는 말은 역시 언제나 어디서나 통하는 진리다. 잘 했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옷장을 정리하다 보니 일 년 내 단 한 번도 입지 않았던 옷들이 수두룩했다. 일 년뿐 아니라 수많은 계절의 뒤바뀜에도 입히지 못했던 옷들은 그렇다고 버려지지도 않았다. 그것들은 유행이 지났거나 사이즈가 맞지 않다거나하는 등의 입지 않는 이유와 추억이 담겨 있어서 그것도 아니면 언젠가 한번은 꼭 입을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이유 등으로 버려지지 않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 계절마다 옷장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가 옷장 밖으로 다시 나왔다.

버리지 못함도 정신병이다. 어떤 물건이든지 사용 여부에 관계없이 계속 저장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쾌하고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는 강박증의 일종인 `저장강박증'이다. 취미로서의 수집과 절약을 위함이 아닌 쓸모없는 것들의 저장은 집착이자 병이다.

일찍이 법정스님은 `무소유'를 말씀하셨다. 스님 당신이 무소유에 관해 크게 깨달으셨다는 일화가 있다. 스님의 책 `무소유'에 실린 잘 알려진 이야기다. 스님은 한날 지인에게 난(蘭) 두 분을 선물 받는다. 스님은 그것들을 잘 키워내기 위해 난에 관한 서적을 구해 읽으셨고 생육에 필요한 비료를 구해오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으신다. 철에 따라 볕에 따라 온도에 따라 맞는 자리를 찾아 옮겨가며 길러내신다. 본인 스스로 이런 정성을 일찍이 부모님에게 들였다면 효자 소리를 듣고도 남으셨을 거라 하시니 그 정성 안 봐도 알만하다. 봄이면 은은한 향기 따라 연둣빛 꽃 피워 스님 설레게 하고 그걸 보고 찾는 이들도 모두 좋아했다니 그 정성에 대한 보람도 분명 있었다. 그러던 여름철 장마 갠 어느 날 스님은 봉선사로 외출하신다. 장마에 갇혔던 햇볕이 구름 벗어나 뜨거워진 한낮 그때서야 스님은 뜰에 내다놓은 난초 화분이 생각이 나신다. 뜨거운 햇볕아래 축 늘어져있을 난초 잎이 눈에 아른거려 허둥지둥 그 길로 돌아오신다. 돌아와 보니 아니나 다를까 난초 잎은 축 늘어져 있었다. 샘물을 길어다 축여주니 겨우 고개는 들었지만 한번 빠져나간 생기는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이때 스님 스스로 온 몸으로 또 마음속으로 절절히 느끼신 것이 있다고 하시니 그것은 난에 대한 집착이었다. 또 집착은 괴로움이라는 것. 그 지독한 집착을 벗어 나기위해 얼마 후 찾아온 난초처럼 말없는 친구에게 난 화분을 안겨주시고는 스스로 집착에서 해방되셨다고 한다. 그 이후로 하루 한 가지씩 버려야겠다는 다짐을 하셨다. 스님은 난 화분을 통해 `무소유'의 의미를 터득하셨던 것이다.

몰랐다. 비워야 비로소 채울 수 있음을 몰랐다. 귀 달려 말은 알아들었으나 그 참뜻 솔직히 몰랐다. 소유는 집착이자 얽매임이라는 그 속뜻 몰랐다. 짧은 생 살아오며 잃어도 보고 뺏겨도 보고 버려도 보았지만 몰랐다.

필자는 이번 주말 저장강박증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할 것이다. 옷 뿐 아니라 그간 단 한 번도 사용되지 못했거나 손닿지 않았던 것들은 주황색 채소마켓에 오를 것이다. 그곳에서도 선택받지 못한 것들은 나눔으로 그것도 어렵다면 분리배출 되거나 그도 여의치 않다면 타는 것과 타지 않는 것들로 구분되어 합법적인 방식으로 내 공간을 떠날 것이다. 무언가를 비워야만 할 것 같은 겨울이다.

겨울 밤하늘 구름 벗어난 달 보며 깨닫는다. 달도 차면 비우는데 내가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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