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해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 반지아 청주초롱꽃유치원 행정부장
  • 승인 2023.11.0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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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대로 붓 가는대로
반지아 청주초롱꽃유치원 행정부장
반지아 청주초롱꽃유치원 행정부장

 

언젠가 친정엄마와 함께한 단체에서 주최한 여행길에 오른 적이 있다. 살짝 긴장되는 마음으로 탑승한 관광버스에는 엄마 나이 또래의 분들이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웬 젊은이가 다 왔냐는 시선을 온몸으로 받으며 겨우 배정된 자리에 앉았는데 대각선으로 한 할아버지가 눈에 띄었다. 모두가 옆자리에 앉은 친구, 가족, 지인과 간식을 먹으며 대화하고 있는데 혼자 오셨는지 버스 창문을 통해 바깥 풍경만 뚫어지게 보는 모습이 괜히 짠해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옆에서 이것도 먹어봐라, 저것도 먹어봐라, 말씀하시는 친정엄마의 목소리가 희미해지며, 수년 전 마주했던 또 다른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공직 생활에 입문하기 전,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외각의 한 요양원으로 두 달간 실습을 나갔었다. 그곳에는 어두워진 귀 때문에 늘 엄청나게 큰 목소리로 말씀하시는 한 할아버지가 계셨다. 너무 시끄러워서 모두가 할아버지를 피하는 분위기였고 나 역시 할아버지가 어떤 말씀을 하실 때마다 머리가 울리는 느낌에 굳이 가까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하루는 요양원에 들어가자마자 한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오시더니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 할아버지의 말 상대만 해주면 된다고 하시는 게 아닌가. 너무 당황스러워서 어버버하고 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나는 그 할아버지의 방에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얼이 빠진 채 앉아있는 나를 보며 마치 지인을 만난 듯 자신의 얘기를 풀어놓기 시작하셨다. 불과 십몇 년 전까지 공직 생활을 하셨다는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꽤 많은 공적을 이루신 듯했다. 아주 자랑스럽게, 한편으론 비장하게 말씀하시는 할아버지의 자서전 같은 이야기를 한참 동안 듣다가 불현듯 마음이 울컥했다. 조직 내에서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박수받았다던 할아버지가 어쩌다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요양원에서 애물단지 취급을 받게 되었을까. 이러다 지금처럼 자신의 공적에 대해서 계속 반복해서 말씀하시다가 자신의 삶을 정리할 시간도 없이 허무하게 돌아가시는 건 아닐까. 할아버지가 한평생 살면서 놓친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살면서 절대적으로 놓쳐서는 안 되는,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요양보호사의 안내를 받아 식당으로 향하셨고, 나에게 했던 이야기를 처음부터 다시 보호사 선생님께 되풀이하시는 목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아아”로 시작되는 안내방송에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첫 휴게소에 도착해 있었다. 엄마와 함께 화장실로 향하는데 저 앞에서 아까 그 대각선 방향에 앉아계시던 할아버지가 보였다. 내 예상대로 혼자 오신 게 분명했다. 모두가 즐거운 여행길, 유독 일관되게 무표정이었던 할아버지를 보며 수년 전 요양원에서 답을 내리지 못했던 질문들이 다시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나의 심신이 가장 보살핌이 필요할 때 무엇이 나를 끝까지 감싸 안아 줄 것인가. 지금 내가 아등바등 갖지 못해 안달한 그것이 과연 언제까지 반짝일 수 있을 것인가. 조금 먼 과거에도, 조금 가까운 과거에도 찾지 못한 답을 나는 미래의 어느 지점에서는 손에 쥘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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