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대’로 둔갑한 ‘지방시대’
‘서울시대’로 둔갑한 ‘지방시대’
  • 권혁두 기자
  • 승인 2023.11.05 1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한국은 수도권 인구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나라다. 전체인구의 과반(50,6%)이 국토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몰려있다. 재화와 일자리, 인재, 서비스, 생활·문화 인프라 등 모든 자원이 사람을 좇아 수도권으로 몰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 기형적 구조와 현상에 빨대가 꽃힌 비수도권은 시름시름 말라죽어가고 있다. 그래서 등장한 처방전이 ‘균형발전’ 논리다. 수도권 과밀화를 완화해 지방 공동화를 막거나 지체시키겠다는 정책적 전략이다. 
하지만 거의 반세기에 걸쳐 정권마다 국정의 우선 과제로 삼아온 균형발전 정책은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다 지금은 실종된 상태다. 정부 스스로 전국 기초자치단체의 52%에 달하는 118곳이 인구가 지속적으로 줄어들어 지도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있는 ‘소멸위험 지역’이 됐다고 선언하며 참담한 실패를 자인했다.
균형발전은 수도권 인구가 50%를 돌파한 지난 2020년 이후 사실상 불가능한 과제가 됐다. 수도권의 인구 과반 점유는 수도권 선거 결과가 대한민국 권력의 판도를 좌우한다는 논리를 확고부동한 진리로 굳혔다. 수도권 유권자들의 심기가 집권을 노리는 정당의 정치적 고려에서 1순위가 됐다. 수도권이 누리는 자원을 지방에도 나눠주자는 말은 정치판에서 금기가 돼버렸고, 균형발전은 선거 때 잠깐 등장해 지방 유권자를 기만하는 공허한 구호로 전락했다. 노무현 정부때 착수했지만 4개 정권이 교체된 지금까지도 제자리 걸음 중인 국회 세종분원 설치가 쓰레기통에 버려진 균형발전 정책의 현주소를 웅변한다.
수도권 비대화의 심각성은 이 문제가 지방 소멸을 재촉하는 부작용에 멈추지않는다는 데 있다. 국가 존망이 걸린 저출산 문제의 결정적 요인으로도 꼽히기 때문이다. 지방에서 서울로 유입되는 인구의 80% 가까이가 15~ 34살 사이 청년층이다. 지방 청년세대까지 흡수한 수도권이 출산율을 선도하는 역할을 해야 당연하다. 실상은 그 반대다. 지난해 서울시 합계출산율은 0.59명으로 국가 전체 출산율 0.78명보다 한참 떨어진다. 청년세대를 잠식한 서울이 청년세대를 뺏긴 지방보다 못한 출산율에 허덕이는 것이다. 
엇그제 한국은행이 발표한 ‘지역 간 인구이동과 지역경제’ 보고서는 이같은 수치를 밝히고 수도권에 진출한 청년들이 과도한 경쟁과 집값 등 높은 가계비용 등으로 결혼과 출산을 유보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보고서는 수도권 청년인구 유입을 저출산 주범으로 지목하고 ‘지방에 수도권에 맞설 경쟁력을 갖춘 거점도시를 육성해 인구이동을 최소화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제안했다.
이 보고서는 대통령실의 의지와도 상통한다.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는 지난 9월 부산에서 지방시대 선포식을 갖고 지방에 새로운 기회를 부여할 4대 특구 조성계획을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도 참석해 “지역 경쟁력이 곧 국가의 경쟁력”이라며 “모든 권한을 중앙정부가 움켜쥐고 말로만 지방을 외치던 지난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지방시대위는 엇그제도 ‘지방시대 종합계획’을 발표하고 “지방이 주도하는 과감한 지방분권과 교육개혁, 특화발전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느닷없는 ‘메가 서울’ 구상 앞에서 대통령과 지방시대위의 소신에는 금이 가고 말았다. 국민의힘은 김포뿐 아니라 주민이 원하면 광명 구리 하남 부천 등 인접 도시들까지 서울에 편입시켜 국제적 메가시티로 키우겠다고 주장한다. 외곽 도시들이 대거 서울로 묶이면 서울의 개발 공간과 부동산 투자 여지가 확장돼 지방 인구와 자원의 상경을 가속화 할 것이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알 일이다. 서울도 키우고 지방도 키워서 윈윈을 하겠다는 따위의 ‘어불성설’로는 지방을 설득할 수 없다. 수도권에서 몇석 더 건지기 위한 총선용이 아니라면 대통령실과 지방시대위원회가 ‘지방시대 선포식’이 두달도 안돼 ‘서울시대 선포식’으로 돌변한 까닭을 밝혀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