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삶의 조건
좋은 삶의 조건
  •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 승인 2023.11.01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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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최지연 한국교원대 초등교육과 교수

 

정기검진 차 들른 단골 병원, 그만두었던 간호사가 돌아와 무척 반가웠다. 살이 많이 빠져 예전에 그 분인가 못 알아보았는데, 먼저 인사를 건네준 덕분에 알아보았다. 어떤 방법으로 다이어트를 했기에 이리 살이 빠졌냐 물었더니 뜻밖의 대답. 옮긴 병원에서 직원들 사이의 관계가 너무 힘들어 살이 빠졌다는 게 아닌가? 신장마저 나빠져 큰 병원에 다니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가족도 아닌 직장 동료와 관계가 뭐 그리 중요할까 싶겠지만, 우리가 80세가 될 때까지 친구와 보내는 시간이 8,800시간이고 연인과 같은 친밀한 파트너와의 활동에 9,500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직장에서는 11만2,000시간을 보낸다고 하니 동료와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게 된다. 이 시간 분석은 영국 사람을 기준으로 한 것인데 영국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터에서 보내는 우리는 친구나 연인과 보내는 시간보다 직장 동료와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을 것이다.

지난 달 말 하버드대에서 현재까지도 진행 중인 `성인 발달 연구'의 보고서 우리말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1938년 하버드 의대 성인 발달 연구소는 하버드대 2학년 재학생 268명과 보스턴 최빈곤층 10대 후반 456명을 두 그룹으로 분류해 85년간 그들의 삶을 추적 조사했다. 이 연구는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연구로 85년 동안 84%의 참가자들이 연구에 지속 참여했고, 이 중 60명은 90세를 넘겼으며, 이들의 자녀 1305명도 이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올해 발표된 보고서의 제목은 “The good life”, 이 보고서는 무엇이 좋은 삶을 만드는가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주제로 연구한 보고서가 있다. 종단연구는 아니었고, 2022년 4월 온라인 웹 조사로 진행된 것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이 생각하는 좋은 삶, 행복의 조건은 물질적인 측면에서는 `고정적인 수입'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며 비물질적인 측면에서는 `건강'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조건은 자신이 행복하다고 보고한 사람들이나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모두에서 동일했다. 2020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서도 좋은 배우자와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1순위로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고, 건강하게 사는 것, 돈과 명성을 얻는 것이 그 뒤를 따랐다.

하버드 성인 발달 연구에서도 동일했을까? 우리의 삶을 만족스럽고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고정적인 수입과 건강일까? 아니면 대체 무엇일까? 하버드의 답은 관계였다. 친밀한 인간관계 말이다. 이 관계는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관계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직장 동료, 독서 모임, 테니스를 함께 치는 사람들, 러닝 크루, 성경공부 모임 등등 다양한 인간관계를 아우른다. 혈연으로 이어지지 않아도, 수 십 년 맺어온 관계가 아니라고 해도 현재 우리의 관계가 강할수록 우리는 행복하고, 만족스럽고, 전반적으로 더 건강한 삶을 살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것은 문화권을 초월하여 적용가능하다.

그럼 어떻게 할까? 당장 무슨 모임에 들어야 하나? 그렇지는 않다.

현재 자신의 관계를 둘러보고 좋은 관계의 필수 요건인 관대한 마음을 베풀어보는 것이 시작이 될 수 있다.

관대한 마음은 긍정의 선순환을 불러일으킨다. 다른 사람을 도우면 도움을 받는 사람뿐 아니라 돕는 사람에게도 기쁨과 이익을 준다. 또 관대한 태도를 취하면 뇌가 좋은 감정을 느낄 준비를 하고 그런 좋은 감정 때문에 미래에 다른 사람을 도울 가능성 역시 더 커지니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어가는 동시에, 좋은 관계를 만드는 발단을 마련하게 된다.

자, 이제 멀리 보지 말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관대함을 베풀어보자. 혹 오늘은 실패하더라도 한 번 더 시도하고 노력해보자. 좋은 삶은 어쩌면 좋은 사람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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