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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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례 수필가
  • 승인 2023.10.26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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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용례 수필가
김용례 수필가

 

교토 여행을 다녀왔다. 기억에 남는 풍경도 음식도 별로 없다.

그런데 고려미술관 입구 포스터에 달 항아리를 바라보며 이를 하얗게 드러내고 웃고 있는 어르신의 모습은 생생하다. 고려미술관 수집가 정조문, 그는 한국인이다. 고려미술관은 교토부 기타구 가미기시초 시치쿠에 있다. 1988년 10월25일 교토 땅에 개관하여 올해로 35주년을 맞이했다. 미술공예품 약1700점 모두를 일본에서 모았다고 한다. 그는 조선인은 그렇게 무시하면서 우리 예술품은 애지중지하는 일본인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단다.

몸을 만들고 지탱해주는 것은 음식이지만 마음을 지탱해주는 것은 사랑과 꿈이다. 그는 40여 년 전 한국의 백자 둥근 항아리 하나에 매료되어 골동품 가게 앞에 멈춰 섰다. 그에게 달 항아리는 조국이고 고향이었다.

조국은 해방되었지만 그는 지금까지 해방되지 못하고 그토록 오고 싶었던 조국, 고향땅을 밟지 못하고 서럽게 살아온 일본에 묻혔다. 조선인 노동자의 아들로 자라면서 `조센징'이라 놀림을 받고 자라난 그가 어느 날 운명처럼 조선 백자 하나를 만나면서 한국의 자존심인 고려미술관을 세웠다. 고려미술관에 “내가 일본 교토에 온 지 벌써 64년이 됩니다. 오랜 세월 속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쳤고 우연히 우리나라 고미술품을 만나게 되어 그것을 조금씩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재일 교포 3- 4세들이 조국의 역사를 알고 문화에 관심을 가져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고려(高麗) 미술관 성립의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라는 글이 있다. 뭉클했다. 미술관을 나오며 `고생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했다. 나는 교토 시내를 버스로 여행하면서 우리가 이 나라 이 사람들에게 지배당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오늘도 청주박물관을 가면서 얼마 전 다녀온 고려미술관을 생각했다. 이건희 컬렉션 어느 수집가의 초대로 청주가 한동안 즐거웠다. 오늘 네 번째 걸음이다. 김홍도작품 추성부도가 다시 전시 되었다 하여 또 방문했다.

추성부도는 중국 송대의 문인 구양수가 지은 추성부를 그린 그림이다. 초가서옥에 앉은 시인이 나무 사이로 들리는 가을바람소리에 귀 기울이며 동자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그렸다. 바람 소리, 그 스산하고 차가운 느낌을 붓에 묻은 먹물을 한 번 짜내고 붓끝으로 터치해 표현했다는 것을 설명으로 들었다.

컬렉션 덕분에 이번 가을 청주박물관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서울, 대전, 충주에 사는 지인들을 초대 인심을 썼다. 서울에 있는 친구들이 서울 같으면 꿈도 못 꾸는데 청주는 그래도 여유가 있어 예약 못 해도 볼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전시장을 나오며 끝으로 영상이 나오는 것을 방문할 때마다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보았다. 마지막 장면 이건희 회장님의 사진이 크게 나온다. 회장님은 “문화유산을 모으고 보존하는 일은 인류 문화의 미래를 위한 것으로서 우리 모두의 시대적 의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하셨다. 나는 고개를 깊숙이 숙여 인사했다. 고맙습니다.

내가 고려미술관에 갔을 때 정조문 어르신 아드님이 나와 있어 아버지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사진 속의 어르신이랑 너무나 똑같아 깜짝 놀랐다. 그는 아버지가 그토록 가고 싶었던 조국, 고향에 끝내 가지 못했던 전설 같은 이야기 하면서 눈가가 붉어진다.

회장님은 그 많은 작품을 기증해 전 국민이 다 같이 볼 수 있도록 했고 정조문 그는 일본에 살면서 일본사람들이 가지는 우리 미술품과 공예품들만 수집하셨다는 말씀에 감동했다.

이건희, 정조문 두 분의 어르신 덕분에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고 감상할 수 있는 복을 누리고 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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