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기행기(3) - 비탈에 선 도시, 다람살라
인도 기행기(3) - 비탈에 선 도시, 다람살라
  • 박윤미 수필가
  • 승인 2023.10.25 1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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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박윤미 수필가
박윤미 수필가

 

델리에서 암리차르까지 기차로 6시간, 이후 12인승 승합차로 갈아타서 또 계속 달렸다. 점차 한적한 풍경으로 변하고 저 멀리 산머리가 보인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낮게 드리운 하얀 구름 한 조각이 우리를 호위하듯 함께 달린다.

그러나 다람살라에서 오늘의 노을을 보겠다는 소망은 짙은 안개 속에 묻혀버렸다. 차량은 뿌옇게 어둠이 내린 산자락, 좁은 길을 꼬불꼬불 계속 올라간다. 활기차던 일행들 모두 이젠 말없이 기사의 수고를 응원한다. 앞에서 뿌연 불빛이 서서히 밝아올 때면 약속이나 한 듯 숨소리가 잦아들고 맞은편에서 다가온 차량이 아슬아슬하게 오른쪽으로 스쳐 지나면 가벼운 탄성을 내뱉는다. 그리곤 또다시 좁은 어둠이 앞에 놓인다.

산길을 얼마나 올랐을까, 드디어 인적이 보인다. 안개를 뚫고 노랗게 빛나는 가로등, 습한 공기, 서로 주고받는 개들의 짖는 소리, 병풍처럼 높다란 검은 산자락에 다닥다닥 빛나는 민가의 불빛들. 인도 속의 티베트, 다람살라에 도착했다. 출발한 지 14시간 만이다.

올 2월, 빅터 챈의 `용서'를 통해 다람살라에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다는 걸 알았다. 달라이 라마에 대해서도, 티베트의 상황에 대해서도 조금 알게 되었고 티베트 불교에 대해서도 접하게 되었다.

1937년 가난한 농가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의 이름은 `라모 톤둡', 달라이 라마 13세가 열반하자 이 아이는 그의 환생자로 지목받아 5세에 달라이 라마 14세, 즉 티베트의 지도자가 된다. 그러나 중국의 침략과 탄압에 맞서 싸우던 24살의 젊은 청년 지도자는 결국 고국을 떠나 히말라야 설산을 넘어야 했다. 지도자를 따라온 민중들과 함께 타국 땅을 빌려 어렵게 자리 잡은 곳이 바로 다람살라이고, 그들은 이곳에서 티베트 임시정부를 세우고 티베트의 맥을 이어가며 독립을 꿈꾸고 있다. 현재 공식적으로 티베트라는 나라는 없지만 실제로는 이렇게 명백히 존재하는 것이다.

사실상 티베트인들이 주로 사는 곳은 다람살라의 윗동네로 멕그로드 간즈 지역이다. 숙소의 구조가 이 지역의 지형적 특징을 단적으로 말해주는데 숙소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1층으로 들어갔었다. 5층의 방을 배정받아 짐을 놓고 곧바로 늦은 저녁을 먹으러 가려는데, 7층으로 올라가 뒤쪽으로 난 문으로 나가라고 안내받았다. 이 길조차 곧 가파른 계단으로 이어진다. 집 대부분이 이런 식으로 경사진 벽에 기대있는 다층 건물인 셈이다. 높고 가파른 산자락에 만들어진 이 독특한 풍광을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

다음 날, 새들 소리에 잠이 깨었다. 5시 18분. 어제의 긴 여정에도 불구하고 머리가 맑다. 지도 속에서만 보던 첩첩의 히말라야 품속에서 아침을 맞다니, 평화와 행복감이 충만한 `현재'가 진정 내 것이다. 부쩍 높은 뾰족한 봉우리 위로 하늘이 푸르게 밝아지고 있었다. 가볍게 나섰다.

달라이 라마가 거주하는 곳은 멀지 않았다. 지나는 사람들에게 `쭐라캉(티베트 말로 궁전을 뜻함)' 가는 길을 물었는데 발음이 이상했던지 통하지 못하고, `라마 모스크'라고 하니 길 따라 내려가라고 알려준다. 과하지 않으면서도 활짝 웃는 얼굴들, 평온하고도 당당한 눈빛들, 이들의 표정을 담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달라이 라마의 직할 사원인 `남걀 곰파'는 한 국가의 주요 사원이라고 하기에는 의아스러울 정도로 티베트 전통미와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커다란 나무판을 깔고 그 위에서 온몸으로 오체투지 절을 하는 티베트인들의 모습은 오히려 이 초라한 콘크리트 건물을 그 어느 사원보다 경건하게 만든다.

오른손으로 마니차를 돌리며 시계 방향으로 천천히 돌았다. `옴마니반메흠', 나는 불교도는 아니지만 온 마음을 담아 기원해 본다. 이 척박한 땅에서도 평화로운 웃음을 잃지 않는 이들에게 이 평화가 지속되기를, 이 세상 모든 곳이 평화롭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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