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걷기 찬가
맨발걷기 찬가
  • 김기원 시인 편집위원
  • 승인 2023.10.18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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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20일 전부터 맨발걷기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합니다.

볕이 좋은 오후 3시쯤 김수녕양궁장 맞은편에 있는 숲공원으로 가서 신고 온 슬리퍼를 출입구 옆에 벗어두고 숲속 오솔길을 맨발로 1시간 40분 걸은 후 물기 스며든 진흙더미에 서서 20분가량 접지(接地)한 후 귀가하는데 보람이 쏠쏠합니다.

수면의 질도 좋아지고, 줄었던 종아리와 허벅지 근육도 되살아나고, 보기 흉한 뱃살도 들어가고, 몸과 마음에 겸손과 감사까지 스며들어 경이롭습니다.

숲공원이 집 가까이에 있고, 흙 묻은 발을 씻을 수 있게 청주시가 수도꼭지 4개와 깔판을 설치해 놓아 편하게 오갑니다.

아내와 트레킹화를 신고 걸었던 그 길을 맨발로 걷게 된 건 파열된 왼쪽 무릎연골을 치유하려는 의지의 발로였습니다.

물리치료를 받으며 지팡이를 짚고 어렵사리 다니는데 맨발걷기를 하면 좋아질 거라고, 숲공원에 맨발걷기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가서 한번 해보라는 지인의 말에 이끌려 맨발걷기에 입문했고 마니아가 되었습니다. 수술하지 않고 버티기를 잘했다 여겨질 만큼 통증도 줄고 걸음걸이도 빨라지고 있어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맨발걷기에 알파가 되는 오르막 내리막이 적당히 있고, 보드라운 흙길 표면에 발바닥을 자극하는 돌멩이와 나무뿌리들이 군데군데 있어 걸은 만큼 효험을 봤지 싶습니다.

맨발걷기를 하는 사람들을 눈여겨보니 하루 종일 일삼아하는 분도 있었고, 저처럼 하루에 2시간 정도 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았고, 암 투병을 비롯한 저마다의 걷는 사연이 있어 걷는 모습들이 진지하고 간절해보였습니다. 무릎보호대를 하고 상노인처럼 지팡이를 짚고 좁은 오솔길을 어정어정 걷다보니 추월당하기 일쑤여서 처량하기도 했지만 이렇게라도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으니 의지의 한국인이 된 것처럼 대견스러웠습니다.

걷고 싶을 때 걷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은퇴의 삶이 축복임을 새삼 깨달으며 맨발로 묵묵히 걷고 또 걸었습니다.

각설하고 발은 제2의 심장이라 불릴 만큼 매우 중요한 신체 부위입니다. 한쪽 발에만 26개의 뼈와 33개의 관절, 100개가 넘는 인대와 근육과 신경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하니 지당합니다. 하여 운동전문가들은 이릅니다. 맨발걷기를 하면 발의 뼈와 근육과 인대가 골고루 강화되고 아치가 형성되며, 발의 곳곳에 자극이 가해져 전신의 감각과 기능 강화되어 건강해진다고.

문득 `맨발의 디바' 이은미와 영화 `맨발의 청춘'과 `맨발의 기봉이'가 뇌리를 스치고, 맨발로 춤을 춘 무용가 이사도라 덩컨(Isadora Duncun)과 홍신자가 생각납니다. 그들에게 맨발은 `꾸밈없는 진솔함'이었고 `자유로운 진실한 영혼'이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수행을 위하여 맨발로 출가했고, 깨달음을 얻은 다음에도 맨발로 중생들을 만나 가르치시다가 길 위에서 열반하셨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불상은 맨발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만족(滿足)과 흡족(洽足)이라는 말에 발족(足)자를 쓰는 연유도 음미해볼 대목입니다.

아무튼 발의 소명은 접지와 이동에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땅이 아닌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구조물과 접지하고 이동해 발은 편해졌지만 땅의 기운을 받지 못해 영육의 건강은 부실해졌습니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찰진 맨땅에 맨발로 접지하고 한동안 서있으니 발등이 발그레 집니다. 땅과 교감한 좋은 표징이지만 아픈 지구의 가픈 호흡이 발바닥에 와 닿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합니다.

아담과 이브가 그랬듯이 원래 인간은 맨발이었습니다. 사냥과 험지이동의 편의성과 효율성을 위해 양말과 신발을 만들어 신으면서 지구의 저주가 시작되었습니다.

땅과의 접속을 통해 지구와 하나 되는 것이 어씽(earthing)이자 맨발걷기의 본질입니다.

돈 안들이고 남녀노소 누구나 할 수 있는 유익한 운동이 바로 맨발걷기입니다.

양말과 신발뿐만 아니라 근심 욕심도 벗어던지고 걷는 겁니다. 맨발걷기란.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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